[리사유키] 빛과 설탕
“그게 대체 무슨 말이죠?”
로젤리아 멤버 모두가 유키나를 쳐다보며 당황한 표정을 짓는다. 카페테리아에 놓인 원형 테이블에 빙 둘러앉은 멤버들이 유키나에게 농담하는 거냐고 되묻는다. 그러다 유키나가 농담을 하는 사람일리 없음을 알기에 다들 멋쩍은 표정만 지으며 서로를 쳐다본다.
“방금 말했듯이 일주일 뒤, 미국에 유학을 가기로 했어. 걱정하지 마. 8개월 뒤에 바로 돌아오니까.”
“아니, 그러니까…….”
리사가 설탕 스틱을 든 손에 힘을 준다. 종이로 된 포장지가 파삭 소리를 내고, 스틱이 반으로 부러진다. 부러지는 걸로도 모자라 구겨진다. 사요는 파삭 소리에 옆을 보다가 리사의 표정에 바로 고개를 돌린다. 도저히 저런 얼굴은 미안해서라도 봐줄 수가 없다, 고 생각하면서.
“그래서 최근에 연습이랑 녹음 작업, 라이브 스케줄을 평소보다 무리하게 한 거야?”
“맞아. 최대한 많이 작업해두고 떠나면 8개월간 라이브는 못하더라도 노래는 모두에게 들려줄 수 있잖아. 라이브 하우스에 말해서 대체할만한 라이브 계획에 대해서도 알아봤어, 이를테면 내가 없어도…….”
“유키나.”
“응, 리사. 무슨 일이야.”
“왜 이제야 말했어. 조금 더 일찍 말했어도 별로 상관없잖아.”
“어차피 8개월 정도고 준비도 다 해놨으니까. 바빠서 말 못한 것도 있고 연습에 동요나 불안을 심어주고 싶지 않았…….”
“유키나, 내가 말하는 건 그런 게 아냐.”
웃음기조차 없는 리사의 표정을 본 유키나가 입을 다문다. 리사에게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몰라서,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정말로 리사가 원하는 말이 무엇인지 몰라서, 유키나는 그냥 리사의 얼굴을 말없이 쳐다보기만 한다. 아코가 리사 언니, 라고 조그만 목소리로 말한다. 리사가 잠시 미소 지으며 아코를 쳐다본다. 괜찮아, 아무 것도 아냐, 미안해, 라고 말하며 리사가 손에 쥐고 있던 설탕 스틱을 쟁반 위에 올린다. 모두가 구겨진 틈새로 설탕이 흘러나온 스틱을 가만히 바라본다.
“그래, 유키나, 일주일 후에 떠난다고.”
리사의 얼굴에 다시 미소가 가득하다.
“응.”
자연스레 대화가 이어진다. 사요는 아쉽지만 뭐 문제가 될 일까지는 아니고, 라는 말을 하며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묻는다. 유키나가 준비해놨던 계획을 말하고 일정을 세우는 동안 모두 진정된 분위기 속에서 유키나의 얘기를 들으며 계획에 동의하거나 의견을 제시한다. 평소처럼 멤버들을 챙기고 자연스레 얘기를 이어 나가는 리사를 보던 사요는 잠깐 뭔가를 생각하다 남들에게 보이지 않게 입을 가리고 살짝 웃는다. 웃겨서가 아니라 어이가 없어서. 사요는 여전히 리사의 손에 남은 설탕을 보면서, 털어내지 않은 채 손바닥에 모래알처럼 다닥다닥 붙은 그것들을 보면서, 한 번 더 티 나지 않게 웃는다. 리사의 앞에 놓인 딸기 아이스크림은 녹아버려 거의 절반 넘는 양이 먹을 수 없게 되는 중이다. 사요는 어느 정도 모두와 얘기를 진행하다 평소와 달리 헛기침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조금 날씨가 추워진 것 같으니 내일 얘기하자고, 오늘 모두 갑작스러웠을 수도 있고 한 번에 계획의 너무 많은 부분을 얘기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그런 얘기를 한다. 아코와 린코, 유키나가 잠깐 의아해한다. 그래도 아코와 린코는 사요의 말에 최종적으로는 동의할 것이다. 그걸 아니까. 사요는 먹고 남은 빨대 껍질이나 스푼, 빈 머그잔 등을 정리하며 헤어질 채비를 한다.
“하지만 일주일 뒤에 여행을 가니까 하루라도 아까운걸. 지금 더 얘기하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데.”
유키나가 그렇게 말하자 사요가 입을 다문다. 사요는 유키나를 잠시 쳐다보다가 어쩔까, 하고 생각한다. 여기서 자연스럽게 모두를 헤어지게 할 만큼 자신은 능청스러운 사람이 아니니까. 그렇다고 억지로 헤어지자 하면 유키나는 더 이해하지 못하겠지, 라는 생각을 하고 있자니 리사가 사요를 따라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렇게 시간이 없으면 조금 더 일찍 말해도 됐다고 생각 하는데.”
사요는 리사가 이 와중에도 웃으며 농담을 하는 어조로 저 말을 한다는 게 조금 무서워지는 참이다. 리사가 가방을 싸더니 누구보다 빠르게 쟁반을 들고 카운터로 다가간다. 유키나가 말을 걸려는 듯 리사의 뒤를 따라가려는데, 사요가 유키나의 팔을 저도 모르게 잡는다. 너무 다급해서 말보다 팔이 먼저 나와 버린 것에 사요 자신도 당황하면서.
“무슨 일이야, 사요.”
“지금은 이마이 상, 그, 내버려두는 게 좋지 않을까 해서요.”
“어째서? 사실 리사가 어떤 점에서 화났는지 정확히 모르겠어. 물어봐서 제대로 사과해야 한다고 생각 하는데.”
“그게…….”
사요가 잠시 말을 멈춘다.
“그 마음가짐은 나쁜 게 아니지만 나중에 하는 게 어떨까요.”
유키나가 왜, 라고 묻는데 뜻밖에도 옆에 서있던 아코가 입을 연다. 유키나와 사요는 하던 대화를 멈추고 아코의 말을 주의 깊게 듣는다.
“그, 그러니까, 기분이 평소와 다르면… 평소에는 괜찮은 말도 전혀 다르게 들리잖아요. 게임 못한다는 말을 게임 못하고 있을 때 들으면 기분 나쁜 것처럼.”
그게 무슨 말이지, 라며 유키나와 사요가 되묻는다. 이번에는 린코가 작은 목소리로 말을 한다.
“연주가 잘 안 될 때, 누가 연주 못한다고 하면 평소보다 기분이 더 안 좋잖아요.”
“아.”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이는 동안 리사가 돌아와서는 모두 무슨 대화 하고 있어, 라며 묻는다. 평소랑 별다를 게 없는 표정과 목소리로. 모두 별 거 아니라며 둘러대고는 집을 향해 걷기 시작한다. 세 사람이 앞서 걷는 동안 조금 뒤쳐진 유키나와 사요는 말없이 걷다가 서로를 한 번 바라본다. 사요가 먼저 입을 연다. 이 말은 안 하면 안 될 것 같아서.
“유키나 씨는 이마이 씨가 세상에서 가장 친한 친구인가요.”
“그렇다고 할 수 있지. 리사는 밴드 내에서든 내게 있어서든 소중한 사람이니까.”
“그럼 당연히 서운하지 않을까요.”
유키나가 사요의 눈을 말없이 쳐다본다. 원래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었던가, 같은 생각을 하면서. 사요는 목소리를 낮추며 이마이 씨한테 꼭 사과하세요, 라고 말한다.
“유키나 씨, 스스로가 생각보다 바보 같은 거 알고 계시나요.”
*
자정이 가까워지는 시간, 잠자리에 누우려는 리사의 방문을 열고 누군가 들어온다. 리사의 아빠다.
“응? 무슨 일이야.”
“미나토가 찾아왔는데.”
“뭐? 이 시간에?”
리사는 잠깐 나갈지 말지를 고민하다가 1층까지 내려간다. 닫힌 현관문을 바라보며 신발을 신을 때는 돌아가라고 할지 말지에 대해서도 고민한다. 이런 기분으로는 보고 싶지도 않고 할 말도 없는데. 리사는 신발을 신다 말고 자신의 오른손을 내려다본다. 네일 없이 바짝 깎은 손톱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그 다음은 굳은살. 그리고 유키나를 떠올리다가 낮에 부숴버린 설탕 스틱을 떠올린다. 집에 도착할 때까지 손에 묻어있던 설탕에 대해서도. 알갱이가 녹으며 끈적끈적해진 손에 대해서도. 파리가 꼬일 것 같았던 그 손에 대해, 설탕 스틱처럼 저도 모르는 사이에 순간 부서진 마음에 대해, 아무리 씻어내도 사라지지 않을 것 같은 이 마음에 대해.
“아, 리사. 늦은 시간에 찾아와서 미안. 잠깐 얘기 가능할까.”
“응, 그래.”
리사와 유키나는 집 주변에 있는 공원을 잠깐 걷는다. 늦은 시간이라 아무도 없는 공원 벤치에 앉는다. 유키나는 잠시 말을 고르다 리사를 똑바로 쳐다본다. 리사는 고개를 돌리고 싶다는 생각에 강하게 사로잡힌다. 늘 저 눈이, 저 하고 싶은 일에 대해서라면 올곧게 뭔가를 쳐다보는 눈이, 날 괴롭게 했고, 또 행복하게 했다고. 리사는 낮에 미국에 가게 되었다는 사실을 말했을 때에도 유키나의 눈이 저런 눈이었다는 사실을 떠올린다.
“서운하게 해서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었어.”
“뭐가 말이야. 나 조금 서운하긴 하지만 사과까지 받을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리사가 웃으며 손을 내젓는다. 유키나는 잠시 생각하다 정말이냐고 묻는다.
“정말이야. 설탕 스틱 부러트렸다거나 웃지 않은 건 조금 놀라서 그랬던 것뿐이고. 뭐, 서운하기는 하지만 바빠서 말하지 못했을 거고 우리가 연주를 망치는 것보다는 지금 와서야 말하는 편이…….”
“리사, 정말이야?”
리사는 이제 유키나의 얼굴에조차 시선을 둘 수가 없다. 고개를 내리면 정말이냐는 물음에 아니라고 대답하는 게 될 것 같아서 리사는 눈에 힘을 준다. 리사가 눈에 힘을 줄수록 고개는 내려가지 않았지만 대신 눈에서 눈물이 떨어진다.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정말이란 말이야.”
“미안. 너한테만은 더 일찍 말해줬어야 했는데.”
“정말이지, 서운하다고. 정말 서운해. 얼마나 서운한지 알아. 진짜 엄청나게 많이……”
울음 섞인 목소리에서 이제 목 매인 목소리로 변해가는 것을 유키나는 듣는다. 리사가 보컬이 아니라서 이럴 때는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자신이 못됐다고 생각하면서, 리사가 눈물을 닦은 손바닥에 생긴 굳은살이 더 늘어있는 게 먼저 보이는 자신이 못됐다고 생각하면서.
“좋아한단 말이야.”
유키나의 손이 그대로 멈춘다. 시선도 멈춘다. 리사가 고개를 든다. 리사는 눈물 때문에 조금 흐린 시야 사이로 멈춘 유키나를 본다. 리사는 이런 상황 속에서도 능수능란하게 대처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농담조로 가장한 목소리로 웃으며 입을 연다.
“친구로서 말이야. 정말 좋아한다고. 그래서 서운하다고.”
유키나가 그랬구나, 라고 대답한다. 리사가 안심하며 눈물을 마저 닦는데 유키나는 여전히 멈춰 있다.
“그랬구나. 그래서 그랬던 거구나, 리사.”
“유키나? 그게 무슨 말이야.”
“리사, 아까 했던 말 정말이야?”
“친구로서 좋아하냐는 말? 에이, 내가 유키나를 얼마나 좋아하는데.”
“아니, 친구로서라는 거, 정말이야?”
유키나가 한 번 더 조금 전의 눈을 한다. 올곧아, 리사는 그런 생각을 하며 유키나의 눈을 가만히 쳐다본다. 자로 그은 선처럼, 일직선으로 놓인 도로처럼, 아니, 커튼 사이로 정확히 들어오는 빛줄기처럼, 그렇게 쳐다보는 저 눈. 도저히 저항할 수 없어서 커튼을 닫게 하거나 아니면 활짝 열게 하지. 리사는 유키나의 손을 꽉 잡는다. 나는 빛을 피하지 못하고 만끽하기로 한 사람이다, 어쩔 수 없다, 생각하며 손에 힘을 준다. 지금까지도 손이 끈적끈적한 것 같다는 생각도 하면서. 그저 할 수 있는 말이 없어 손을 꽉 잡은 채, 리사는 유키나를 쳐다본다. 유키나가 잠시 머뭇거리다 입을 연다.
“리사.”
“응.”
“약속 하나만 해 줘.”
내 마음에 대한 대답은 해주지 않는 걸까, 생각하며 리사가 조용히 미소 짓는다.
“8개월 뒤에도 내 옆에서 계속 베이스를 하고 있겠다고 약속해 줘.”
“정말이지, 당연한 걸 왜 약속해야 하는데.”
어둠과 가로등 불빛 사이로 유키나가 희미하게 웃는다. 유키나가 잡힌 손을 빼내 다시 리사의 손을 붙잡는다. 힘을 주고 있는 것을 리사만이 느낄 수 있다.
“난 그 당연한 거면 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