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키리사] 출발선
“리사 언니 말이야. 요새 대단하지 않아요?”
“이건 확실히 대단하네요.”
사요와 아코는 말없이 포장된 쿠키를 내려다봤다. 모두의 쿠키에는 평소보다 배로 노력이 들어가 있어 멤버마다 다른 종류의 쿠키가 포장되어 있다. 게다가 이제는 맛 또한 취미로 만들었다고 해줄 수 없는 수준이었다.
“내일부터 쿠키 가게를 열어도…….”
린코가 쿠키를 씹으며 중얼거렸다. 모두 린코의 말에 동의했다. 기합이 너무 들어간 거 아닌가, 얘기하던 중 유키나 앞에 놓인 쿠키 봉지를 보고 모두 열린 입을 다물지 못한다. 유키나는 가만히 자신의 쿠키 봉지를 들며 입을 열었다.
“삼색 고양이네.”
무미건조하기 이를 데 없는 목소리다.
“줄무늬마다 맛이 다르다고.”
어느 샌가 화장실에서 돌아온 리사가 웃으며 말했다. 아코가 놀라며 되물었다.
“세 가지 색깔 전부 맛이 달라?”
“응, 전부 달라. 참고로 아코한테 준 박쥐 모양 쿠키는 초코가 아니라 깨 맛이야. 처음 시도해봤어.”
“아, 진짜다. 고소하고 맛있어!”
아코가 쿠키를 씹으며 한껏 누그러지는 동안 사요는 쿠키 봉지들을 다시금 훑어보다 한숨을 내쉬었다.
“이마이 씨, 연습은 제대로 하고 계시는 거죠?”
“물론. 이것 봐.”
사요에게 내밀어진 악보는 온갖 필기로 가득했다. 얼핏 보니 대충 적어놓은 것이 아니라 몇 번이고 연습한 다음, 수정을 거듭해 고칠 점과 강조할 점을 적어놓았다. 사요는 머릿속으로 쿠키를 만드는 시간과 악보를 보며 연습할 시간을 어림잡아 계산해보았다. 더군다나 오늘도 리사는 타올이나 생수, 예비 악보 등 필요한 물건을 전부 가방에 챙겨왔다. 부활동이 힘들었다는 말을 했으니 부활동도 참석했으며 오늘도 액세서리는 신경 써서 했다. 저렇게 살려면 몸이 몇 개여야 하지.
“뭐, 연습을 열심히 하고 있다면 상관은 없지만.”
사요는 아무리 열심히 연습하는 자신이어도 이건 좀 무리에 가까운 수준이 아닌가, 하고 생각 했다. 사요는 연습의 양을 늘리고 싶을 때면 다른 일들을 줄이는 편이었다. 그런데 지금 리사는 모든 면에서 양이 늘어나있는 상태였다. 저걸 어떻게 감당하는 거지, 하는 의문이 사요의 머릿속을 채웠다.
“리사.”
“응, 유키나. 무슨 일이야.”
“왜 내 것만 쿠키 종류가 다섯 가지나 되는 거지?”
“그건 그냥 힘 좀 내봤어. 하다 보니 그렇게 됐네.”
유키나는 고양이 모양의 쿠키를 하나 꺼내 씹었다. 오도독 소리가 몇 번 난 뒤, 유키나가 입을 열었다.
“리사, 시간 분배 잘 하고 있어?”
“물론이지. 연습도 다 해왔다고 아까 말했잖아. 사요도 악보 보고는 납득했는걸.”
유키나가 리사의 얼굴을 쳐다본다.
“정말로 시간 분배 잘 하고 있어?”
리사가 웃었다.
“그럼.”
유키나는 턱에 손을 괴고 잠시 뭔가를 생각하는가 싶더니, 이내 공지사항을 발표한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 모두를 한 번씩 둘러봤다.
“리사는 오늘부터 연습 시간을 한 시간 늘릴거야.”
“에? 리사 언니만?”
“그리고 이건 개인적인 부탁이지만 리사는 다음 주에도 쿠키를 이 정도로 만들어줬으면 하는데.”
사요와 아코, 린코가 눈에 띄게 당황했다. 늘 알기 쉽고 올바른 결정만 하는 리더인 유키나가 갑자기 터무니없는 두 가지 사항을 공지하자, 세 사람은 혼란에 빠졌다. 그렇지만 확신에 찬, 심지어 단호하기까지 한 유키나의 말투에 세 사람은 대꾸하기를 망설였다. 유키나가 생각이 있겠지, 하는 마음에서.
“좋아.”
그리고 리사는 이 말도 안 되는 공지에 의문조차 표하지 않았다.
이 말도 안 되는 공지사항이 내려진 뒤로 일주일간 리사는 모든 것을 빠짐없이 해냈다. 늘어난 연습 시간도 지키고 쿠키도 똑같이 만들어왔다. 심지어 다른 것들에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유키나는 아주 가끔씩 리사를 빤히 쳐다봤다. 리사는 그럴 때마다 내가 뭔가 부족한 점이 있냐 물었고, 유키나는 리사가 그렇게 말할 때마다 고개를 저었다. 일주일이 딱 되던 날, 리사는 연습에 나오지 않았다. 몸살감기, 유키나는 그렇게 말했다.
“저기, 이쯤 되니까 정말로 이해가 안 가서 그러는데…”
“무슨 일이지, 사요.”
“이렇게 쓰러질 때까지 연습을 더 시키고 쿠키도 그대로 많이 만들어오라고 한 건 대체 왜 그런 건가요. 이러면 로젤리아에 더 방해가 되는 거 아닌가요. 납득할만한 이유를 듣고 싶은데.”
사요의 옆에서 린코와 아코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유키나를 똑바로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이지는 못했고, 사요를 쳐다보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 정도였다. 유키나는 사요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사요의 생각은 아주 타당해. 일리가 있어.”
그리고 유키나는 세 사람에게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사요와 린코, 아코는 그 설명을 듣고 어느 정도 납득했다. 유키나는 당분간은 각자의 연습에 치중해 개인의 스킬을 향상 시키고, 에너지도 좀 보충해서 돌아오라고 했다. 모두 그러기로 했다. 그리고 유키나는 연습실을 나와 자신의 집을 향해 걸어갔다. 그러다 자신의 집 앞에서 방향을 틀어 리사의 집으로 갔다. 리사의 방에 들어가자, 누워서 눈을 감고 있던 리사가 유키나를 보며 어색하게 웃는다.
“미안해, 유키나. 실망했지. 몸 관리도 노력의 부분인데.”
“물론 몸 관리도 노력의 부분이지. 그런데 리사.”
“응?”
“나도 정말 이렇게까지는 하고 싶지 않았어.”
“무슨 말이야?”
유키나가 한숨을 내쉬며 자신의 이마에 손을 짚었다.
“예전부터 리사는 뭐든지 성실하게 하려는 경향이 있고, 그러다 보니 무리하려는 경향이 있어. 예전에 몇 번 충고했어. 기억나?”
“응, 미안해.”
“사과하라는 게 아니야. 그렇게 말했는데도 리사… 일주일 전에 쿠키 만들어왔을 때 사실 조금 화나서 그런 결정 내린 거야.”
“화났었어?”
“밀어붙일 수 없을 때까지 밀어붙이면 더 이상 무리하지 않을 것 같았거든. 몸이 기억하게 하고 싶었는데, 솔직히 어느 정도 힘들면 리사가 그만둘 줄 알았거든. 아플 때까지 무리할 줄은 몰랐어. 미안해. 그 점에 대해서는 사과할게. 멤버들한테도 사과하고 왔어. 다들 어느 정도는 납득해줬어, 어느 정도지만. 사요는 한숨부터 쉬더라고.”
“하하… 미안해.”
“나한테 미안할 게 아니라 리사는 리사 자신한테 좀 미안해할 필요가 있어. 너 자신에 대해 너무 혹독하게 다룬다고.”
유키나의 눈매가 매서워진다. 리사는 유키나의 시선을 잠시 회피하다 이내 눈치를 보며 말을 꺼냈다.
“걱정 끼친 것에 대해 미안하다고 하는 건 괜찮아?”
“그건 괜찮아.”
“다신 이런 일 없게 할게.”
“그 말도 무리하는 걸로 들리는데.”
“아니야, 그런 거 아니니까.”
침대에서 급하게 일어나려는 리사를 눕힌 뒤, 유키나는 가방에서 이온 음료가 든 페트병을 꺼냈다. 리사의 이마에서 떨어진 수건을 다시 올려놓은 뒤, 페트병의 뚜껑을 손으로 힘줘 돌렸다.
“리사, 로젤리아에서든 다른 곳에서든 뒤쳐진다는 생각 하지 않았으면 해.”
“그러도록 할게. 그렇지만 유키나도 그렇고 누구나 그렇잖아? 그런 생각 아주 쉽게 들잖아. 노력은 하겠지만 잘 될지 모르겠네.”
유키나가 페트병을 내밀자, 리사가 누운 채로 천천히 이온 음료를 마신다.
“리사는 나한테만큼은 일류야. 내가 늘 기억하는 리사의 모습이 등이라고 하면, 내가 뒤에서 쫓아가는 중이라고 하면, 그러면 이렇게 쓰러지는 일 없게 할 수 있겠어?”
그 말을 들은 리사가 사래 들린 사람처럼 연거푸 기침을 한다. 이온 음료가 침대에 흐르자, 유키나는 당황하며 가방 안에 들어 있던 타월을 꺼냈다.
“아니, 괜찮아. 이 수건으로 일단 닦고 새 수건 이따 가져오면 되니까.”
리사가 자신의 이마 위에 있던 젖은 수건으로 침대에 흐른 음료를 닦는다. 음료를 닦던 리사가 갑자기 가방에 타월을 집어넣고 있던 유키나의 손을 잡았다. 뜨거워, 라고 말하려던 유키나는 리사와 눈이 마주쳤다. 리사가 자신을 이렇게 똑바로 쳐다본 게 너무 오랜만이어서 그대로 멈춰버린다. 리사는 지금 얼굴도 손도 빨갛다.
“유, 유키나.”
“무슨 일이야.”
“쿠키는 계속 만들면 안 될까.”
“모두에게 한 종류.”
“유키나에게만 고양이로 하고, 나머지는 같은 종류로…”
“안 돼.”
“그렇지만 나… 나한테도 유키나는 일류인걸. 쿠키, 무리하려는 게 아니라, 정말로 만들어주고 싶어서 그래.”
유키나가 리사의 손을 잡아 침대 위에 다시 내려놓았다. 그걸 안 된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는지 리사의 손이 이번에는 유키나의 양 어깨를 잡는다.
“나 정말로 좋아해. 유키나. 아니, 유키나한테 쿠키 만들어주는 거. 아니, 유키나도 좋아. 그리고 쿠키도…”
유키나가 리사의 손을 떼어내며 웃었다.
“리사, 지금 열이 너무 오른 것 같아. 나 이제 가볼 테니까, 잠을 좀 자는 게 좋겠는데.”
리사는 잠시 당황했지만, 일단 유키나가 웃고 있다는 사실에 안심하며 침대에 천천히 몸을 눕혔다. 유키나는 방에서 나갈 준비를 하며 리사를 가만히 내려다본다. 리사가 잘 가, 라고 하자 유키나가 다시 웃는다. 리사는 잠들기 위해 눈을 감는다. 열 때문에 어둠 속에서 머리만 울리는 느낌을 받으며 리사는 소리에 집중한다. 자리에서 일어나던 유키나가 리사에게 속삭인다.
“나도 정말로 좋아해. 리사가 쿠키 만들어주는 거.”
정말이냐고 대답하려는데, 대답이 나오지 않아 리사는 입만 살짝 연다. 잠이 들려는 리사의 귀에 대고 유키나가 뭔가 말한다. 꿈이 아니고 환청이 아니기를, 리사는 확실히 들었다고 믿으며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아니, 생각해보니 리사가 좋아. 그리고 쿠키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