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이 아닌 사실은 정확히 지칭할 수 있는 어떤 날부터 송하나는 탈론이라는 조직에 대한 의문과 오버워치라는 조직에 대해 의문을 느끼기 시작했다. 탈론과의 교전 중, 송하나의 메카가 파괴된 날이었다. 탈론의 요원은 너무나도 어려 보이는 송하나가 오버워치라고는 생각하지 못 했고, 송하나에게 여긴 어린아이가 있을 곳이 못 된다, 고 말했다. 그런 요원을 오버워치 요원이 죽였을 때, 그 때부터 송하나는 의문을 느끼기 시작했다. 탈론은 세뇌된 인간들이 아닌 걸까, 탈론은 잘못되고 사악한 생각에 찬 사람들의 모임이 아닌 걸까. 오버워치의 고위 간부들은 송하나가 세뇌 당하지 않았다는 치글러 박사의 진단서에는 동의했으나 당분간은 전투에 부분적인 참가만 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송하나는 자신을 믿지 못하는 간부들에게 대단히 기분이 나빴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사실, 정말로 송하나는, 탈론이 잘못되지 않은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으므로.
-모리슨 아저씨, 어떻게 생각해요?
-아아, 글쎄. 아까 보니 그 요원은 훈장 수여식을 받고 있더군.
-아저씨, 말 돌리지 말고.
송하나가 웃으며 모리슨을 쳐다봤을 때, 머리가 이미 새하얘질 대로 새하얘진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한숨을 내쉬는 모리슨을 웃으며 쳐다보던 송하나는 웃음기가 싹 가신 얼굴로 이제 말해보세요, 라고 했다. 오버워치가 가장 잘 나가던 시절이나 지금이나 레예스는 늘 모리슨을 보며 말 돌리지 말고 설명해 봐, 라는 말을 자주 했다. 이제 리퍼가 된 레예스는 모리슨의 등 뒤로 다가와 너희들이 날 이렇게 만들었어, 라는 말을 하고는 했다. 모리슨, 말 돌리지 말고. 리퍼의 샷건에서 나오는 총알은 자주 모리슨의 얼굴 옆 허공을 스치고는 했다.
-사실 누가 나쁘고 누가 착하고 같은 건 없어. 하나야, 그러니까 말이지.
그저 신념이 다를 뿐이란다, 모리슨은 그렇게 말했다. 송하나는 그 말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봤다. 어느 쪽도 나쁜 게 아니고 그저 신념이 달라서 두 조직이 나뉘어졌다는 사실에 대해서. 아, 모리슨. 송하나는 고개를 저으며 탈론, 이라고 작게 중얼거렸다. 오버워치 요원들이 자신의 말을 듣기라도 한다는 듯 아주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 말은 두 조직 다 나쁘거나 착하다는 거죠? 모리슨은 그 말에 대답해주지 않았다. 송하나는 탈론의 조직원이 된 모리슨을 상상해봤다. 어째선지 리퍼의 모습이 떠올랐고, 송하나는 그 사실이 참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
사람들은 치글러 박사가 송하나의 진단서를 일부러 고쳐서 제출한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그게 아니면 송하나가 치글러 박사를 속인 게 아닐까? 하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치글러, 닥터 메르시는 그 어느 쪽에도 동의하지 않았다. 하나에게 세뇌의 흔적이 전혀 없었으며 메르시는 하나가 충분히 그런 고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다른 요원들의 손을 밀쳐내며 당신들도 다 똑같다, 고 하나가 외쳤을 때조차 메르시는 하나를 검사해야겠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너무 일찍 전장에 합류한 탓이지, 결국 이렇게 됐군, 그런 것들을 생각하고 있었을 뿐.
-박사님, 제가 잘못된 건가요?
송하나가 이렇게 말할 때마다 메르시는 무슨 말을 해주는 게 가장 좋을까, 에 대해서 생각했다. 메르시는 늘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거나 안아주며 귀에 같은 말을 속삭였다. 늘 같은 말이었다.
-하나는 잘못되지 않았어요. 그래서 미안해요.
그래서 미안해요, 송하나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고개를 끄덕이며 메르시의 품에 파고들었다. 다들 알고 있었군, 다들 잘 알고 있었어. 송하나는 기지 안에서 훈장을 수여받은 그 요원이 지나갈 때마다 요원을 노려봤다. 그러나 요원에게 싸움을 걸지는 않았다. 송하나는 이제 기지 안에서 소리를 지르거나 요원들을 욕하지 않기로 했다. 그저 조용히 앉아서 밥을 먹었고, 가끔 농담을 하거나 웃기도 했다. 예전으로 돌아간 하나를 보며 요원들은 안심했다. 트레이서는 그런 하나의 어깨에 손을 얹거나 가끔 재미있는 거 보여줄까? 라고 말하며 점멸이나 시간 역행을 통한 묘기를 선보였다. 하나는 웃었다. 트레이서는 웃으며 금방 회복했네? 라고 말하다가 문득 탈론의 아멜리를 떠올렸다. 일전에 트레이서를 향해 아멜리는 웃으며 말했다. 전부 알아냈네, 이제 어른이 될 수 있겠어? 탈론도 별로 나쁘지 않다는 걸 깨달았을 때, 트레이서는 아멜리의 피곤한 표정을 끝없이 바라봤다. 너는 이미 어른이네, 트레이서는 그 말밖에 할 수 없었다. 금방 어른스러워졌네, 트레이서는 하나에게만 들릴 목소리로 가끔씩 그렇게 속삭여줬다.
언젠가 네가 알아서 선택하게 되겠지, 아멜리는 그런 말을 트레이서에게 했었다. 물론 송하나는 그 말을 들은 적이 없지만 선택이라는 것을 해야한다고 생각했다. 기지 안에서 예전처럼 살기로,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는 것처럼 보이도록 살기로 했다. 모리슨, 그저 신념이 다를 뿐이라고 했죠? 송하나는 피식거리며 웃었다. 그럼 나도 내 신념을 선택하면 되겠네. 그런 생각을 했을 때, 송하나는 사실 자신이 어디에도 속해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