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창작[팬픽션]/오버워치

[메르하나메르] 불안2

리지드 2016. 7. 21. 22:39

 -하나양, 하나양은 자신의 손으로 사람을 죽여본 적이 있나요?

 

 언젠가 메르시가 그렇게 말했을 때, 하나는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지 못했다. 우리는 늘 전장에 가서 사람을 죽이는데, 우리 손으로 사람을 쏘는데. 네, 라고 대답하는 하나에게 아마 없을 텐데, 라고 말하며 웃는 메르시의 미소는 의미심장해서 하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신이 파악하지 못한 어떤 의미가 말에 숨겨져 있는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의미를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그 때는 그저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박사님.’ 하고 애교를 떠는 것으로 그 상황이 지나갔었다.

 그 때는 정말로 그게 무슨 말인지 알지 못 해서 하나는 메르시가 자기 몸에 해를 입히는 것을 보고 화를 냈다. 전쟁이 힘들어서, 라고 중얼거리는 메르시의 팔에는 칼자국과 주사자국이 가득했다. 주변에 흩어진 마약성 진통제와 수면제, 등을 보며 하나는 입을 열자마자, 소리를 질렀다. 불같이 화를 내며 이게 대체 무슨 일이냐고 했다. 전쟁이 힘들어서, 라는 말밖에 안 하는 메르시 때문에 하나는 주사기들을 바닥에 내팽겨 치고 메스와 칼을 주변에 던져버렸다. 자신도 전쟁을 겪어봤는데, 이게 그 정도 일인가? 이게 그렇게 힘들어요? 하나는 나도 잘 참는데! 라고 했다. 메르시는 그런 하나를 스윽 올려다봤다. 그리고 웃으며 전에 했던 말을 또 반복했다. 하나양, 하나양은 자신의 손으로 사람을 죽여본 적이 있나요? 웃고 있는 메르시의 눈은 초점이 잘 맞지 않았다. 힘없이 앞머리를 쓸어 넘기고 주사자국을 긁는 그녀의 모습은 영락없는 병자처럼 보였다.

 

 그리고 하나는 이제 와서야 그 때 화를 낸 것을 후회했다. 조금 이해해주고 다독여줄 걸 그랬나, 아니면 뭔가 다른 일을 해줬어야 했나. 하나는 힘이 빠져 얼얼한 양손을 쥐었다 펴기를 반복했다. 자신에게 달려드는 남성의 목을 맨손으로 졸라 죽인 것이다. 눈앞에서 눈동자를 굴리며 커억 소리를 내다 죽어가는 남자를 보는 것이 결코 좋은 경험이라고는 할 수 없다. 죽어서 몸이 경직된 남자를 내려다보다가 하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머리를 쓸어 넘기며 피곤한 표정으로 메르시를 떠올렸다. 자신의 손으로 죽인다는 건 이런 의미군요. 좀 더 쉽게 설명해줬어도 되잖아요. 하나는 양 팔이 부서진 메카를 보다가 그대로 아군들이 있는 진영을 향해 뛰어갔다. 가끔 자신의 발목을 붙잡으려 드는 시체들의 손목을 짓밟으면서. 너무나도 피곤한 표정으로, 계속 뛰어갔다.

 

 *

 

 하나양, 정말로 좋아해요. 그렇게 고백했을 때, 얼굴을 붉히던 조그만 아이의 모습을 떠올렸다. 저도 박사님을 좋아해요, 그렇게 말하는 아이에게 웃어보였다. 이 고백이 농담이라고 생각하는, 사랑이 아니라 좋아하는 것 뿐이라고 생각하는, 아이의 솔직한 마음도 잘 보였지만 메르시는 굳이 정정해주지 않았다. 당신을 사랑하는 거라고 고백할 용기가 메르시에게는 없었다. 하나가 화를 냈던 그 날에도 메르시는 고칠 생각보다는 이제 돌이킬 수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 생각을 한 자신으로 인해, 더욱 고백을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상황 속에서도 나쁜 습관들을 고칠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던 것이다. 이런 나도 사랑해 줄거냐고 비참하게 묻거나 고백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순진하고 어린 그 아이는, 이런 박사님도 박사님이에요! 라고 말하겠지. 그 말이 시간이 흐를수록 얼마나 잔인해질 지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는 채로. 나중에는 언제까지 이런 당신으로 살 거냐고 물으며 화를 낼 아이의 모습이 선했다. 그러니까, 애초에 사랑하지 않고 끝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주사기를 다 부러트리며 화를 내는 아이가 조금 괘씸하기도 했다. 직접 죽여 봤어요? 그 말에 아이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래, 그 놈의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 그 표정이 평생 나를 괴롭혔다. 대부분의 환자들에게서 보이는 표정으로 도대체 왜 자신의 몸이 이렇게 됐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다. 다리가 잘리거나 몸의 일부분이 망신창이가 되어 오는 그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어쩌다 내가 이렇게 됐지, 하는 표정이다. 내 옆의 사람들이 다치는 걸 수없이 봤지만 나는 안 이럴 줄 알았는데, 하는 표정. 하나같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

 

 -어떻게 좀 해주세요, 박사님.

 

 늘 그 말을 하는 환자들을 보며 메르시는 질려버렸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당신이 무능하고 함부로 전장에서 뛰어다닌 탓이에요, 전쟁이 없었으면 당신도 안 다쳤을 걸요? 라고 말하고 싶었다. 다리를 다시 만들어 달라는 부탁에 가까운 것들을 들을 때마다 머리를 움켜쥐었다. 환자의 수는 너무나도 많았고 메르시 혼자서는 그 환자들을 감당할 수 없었다. 늘 몸에서는 피 냄새와 고름 냄새, 소독약 냄새가 함께 풍겼다. 전장에서 돌아온 사람들보다 더 지독한 냄새가 메르시의 몸에서 풍겼다. 박사님은 향수를 자주 뿌리시네요? 하나의 그 말에 메르시는 웃었다. 향수를 좋아해요. 뻔한 거짓말이었다.

 잠이 오지 않는 날이 계속되었고 이유 없이 위경련이 오거나 몸이 아픈 날이 계속되었다. 그런 날이 계속되어도 환자의 수는 줄어들지 않았다. 누워서 치료를 받는 병사들의 몸을 흔들며 당신들만 없었어도 민간인들은 다치지 않았을 거라고 외치고 싶었다. 자다가 잠에서 깨면 보이는 풍경들이 지겨웠다. 오버워치 기지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 지겨웠다. 이 기지가 없었다면 탈론도 오버워치도 전부 없었다면, 아무도 다치지 않을 수 있었는데. 머리에 총알이 박혀 이미 숨진 아기를 데려온 부모를 본 날, 메르시는 마약성 수면제를 먹을 수밖에 없었다. 아이와 부모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고 아무 말도 해줄 수 없는 자신이 싫었지만 잠이 잘 왔다. 오랜만에 푹 자고 일어난 그녀는 건강해져 있었다. 아니, 건강해져 있다고 믿었다. 아기를 살리지 못하고도 잠을 잘만 잔 자신이 싫었지만 수면제 탓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늘 수면제를 먹는 날이 계속되었다. 잦은 수면제로 인해 위경련이 올 때면 진통제를 먹었다. 가끔씩은 사탕을 씹어 먹듯 마약성 진통제를 씹어 먹었다. 레나에게 주려고 놔둔 진통제도 씹어 먹었다. 가운을 벗지 않는 날이 늘기 시작했다. 팔에 있는 주사자국과 칼자국은 숨길 수 없는 수준이 되어갔다. 가운을 벗지 않고 늘 일하는 의사로 칭송받기 시작했다. 그저 말없이 있는 날들이 늘어갔다. 입에 문 담배가 입술까지 타들어가는 것도 모른 채 앉아있던 적도 있었다. 그래도 늘 잠은 잘 잤다. 그 아이만 보면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레나 옥스턴, 늘 이런 기분이었나요. 불안이 없는 삶이 너무나도 불안했다.

 

 *

 

 늘 어떻게 고백하면 좋을까, 생각했었다. 박사님, 좋아해요. 박사님, 사랑해요. 이런 박사님의 모습도 전부 다 사랑할 수 있어요. 박사님, 자기 몸에 이러는 짓 안 하면 안 될까요? 수많은 멘트, 수많은 말과 행동, 이벤트. 머릿속에서 가장 좋은 상황들을 시뮬레이션 해보고 실행하기 바로 전까지 가본 적도 있었다. 그러나 늘 말하지 못했다. 고백해도 어쩐지 받아줄 것 같지 않아서, 박사님은 늘 나에게 웃어주지만 거리를 두는 것 같아서, 그래서 고백할 수 없었다. 이런 모습까지 사랑한다고 말하면 고백을 받아줄까? 그런 생각도 했었다. 그렇지만 뭔가 박사님의 모든 모습을 사랑한다고 하는 것은 박사님의 모든 모습을 이해한다는 뜻이 아닐까? 생각은 늘 거기서 멈추고는 했다. 나는 박사님의 모든 모습을 이해하고 있을까?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늘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맨손으로 사람을 죽인 오늘, 하나는 그 답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저도 전쟁을 싫어해요, 박사님. 내가 이렇게 말할 때마다 박사님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어린 아이가 허울 좋은 말을 한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연구실까지 걸어가는 내내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왜 그 때 화를 냈을까, 그 때 왜 다른 말은 해주지 못했을까. 박사님이 스스로를 해치는 모습이 싫다고 생각했는데, 지금도 싫은데, 그래도 다른 말을 해줄 수 있었을 텐데. 속으로 연습했던 수많은 말들을 조용히 우물거렸다. 사랑해요, 박사님. 좋아해요, 박사님. 박사님 생각은 어때요? 저랑 사귀실래요? 박사님을 누구보닫 사랑할 자신이 있어요. 박사님의 이런 모습도 이해해주고 사랑해줄 수 있어요. 박사님, 메르시 박사님, 이 정도가 될 때까지 대체 무슨 일이 있었어요? 고개를 들었을 때, 눈 앞에는 가운을 입은 박사님이 서 있었다.

 

 -아, 박사님.

 

 모든 말들이 머릿속에서 새하얗게 사라지는 것 같았다. 낡고 색이 바랜 가운을 입은 박사님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피가 묻은 맨손으로 박사님의 오른팔을 잡았다. 누렇게 바랜 가운에 피가 묻었다. 메르시가 무슨 일이에요? 라고 묻는 동안에도 입이 잘 열리지를 않았다. 겨우겨우 박사님을 끌어안고 입을 열었다. 늘 풍기던 향수 냄새 사이로 비릿하고 역겨운 냄새가 났다.

 

 -다음에 또 그러면 제 팔에도 똑같은 짓 할 거예요. 그리고… 그리고… 박사님.

 

 

 이제는 자다 깨도 제가 늘 옆에 있어 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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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에 있는 게시물인 불안과 같이 읽으셔도 좋고 안 읽고 읽으셔도 무방하기는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