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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창작[팬픽션]/오버워치'에 해당되는 글 6건

  1. 2016.07.21 [메르하나메르] 불안2 1
  2. 2016.07.07 [위도트레] 불안 1
  3. 2016.06.29 [메르하나/하나메르] 편지
  4. 2016.06.24 [위도트레] 회상 1
  5. 2016.06.21 [트레위도] 회복 2
  6. 2016.06.16 선택 1

 -하나양, 하나양은 자신의 손으로 사람을 죽여본 적이 있나요?

 

 언젠가 메르시가 그렇게 말했을 때, 하나는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지 못했다. 우리는 늘 전장에 가서 사람을 죽이는데, 우리 손으로 사람을 쏘는데. 네, 라고 대답하는 하나에게 아마 없을 텐데, 라고 말하며 웃는 메르시의 미소는 의미심장해서 하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신이 파악하지 못한 어떤 의미가 말에 숨겨져 있는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의미를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그 때는 그저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박사님.’ 하고 애교를 떠는 것으로 그 상황이 지나갔었다.

 그 때는 정말로 그게 무슨 말인지 알지 못 해서 하나는 메르시가 자기 몸에 해를 입히는 것을 보고 화를 냈다. 전쟁이 힘들어서, 라고 중얼거리는 메르시의 팔에는 칼자국과 주사자국이 가득했다. 주변에 흩어진 마약성 진통제와 수면제, 등을 보며 하나는 입을 열자마자, 소리를 질렀다. 불같이 화를 내며 이게 대체 무슨 일이냐고 했다. 전쟁이 힘들어서, 라는 말밖에 안 하는 메르시 때문에 하나는 주사기들을 바닥에 내팽겨 치고 메스와 칼을 주변에 던져버렸다. 자신도 전쟁을 겪어봤는데, 이게 그 정도 일인가? 이게 그렇게 힘들어요? 하나는 나도 잘 참는데! 라고 했다. 메르시는 그런 하나를 스윽 올려다봤다. 그리고 웃으며 전에 했던 말을 또 반복했다. 하나양, 하나양은 자신의 손으로 사람을 죽여본 적이 있나요? 웃고 있는 메르시의 눈은 초점이 잘 맞지 않았다. 힘없이 앞머리를 쓸어 넘기고 주사자국을 긁는 그녀의 모습은 영락없는 병자처럼 보였다.

 

 그리고 하나는 이제 와서야 그 때 화를 낸 것을 후회했다. 조금 이해해주고 다독여줄 걸 그랬나, 아니면 뭔가 다른 일을 해줬어야 했나. 하나는 힘이 빠져 얼얼한 양손을 쥐었다 펴기를 반복했다. 자신에게 달려드는 남성의 목을 맨손으로 졸라 죽인 것이다. 눈앞에서 눈동자를 굴리며 커억 소리를 내다 죽어가는 남자를 보는 것이 결코 좋은 경험이라고는 할 수 없다. 죽어서 몸이 경직된 남자를 내려다보다가 하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머리를 쓸어 넘기며 피곤한 표정으로 메르시를 떠올렸다. 자신의 손으로 죽인다는 건 이런 의미군요. 좀 더 쉽게 설명해줬어도 되잖아요. 하나는 양 팔이 부서진 메카를 보다가 그대로 아군들이 있는 진영을 향해 뛰어갔다. 가끔 자신의 발목을 붙잡으려 드는 시체들의 손목을 짓밟으면서. 너무나도 피곤한 표정으로, 계속 뛰어갔다.

 

 *

 

 하나양, 정말로 좋아해요. 그렇게 고백했을 때, 얼굴을 붉히던 조그만 아이의 모습을 떠올렸다. 저도 박사님을 좋아해요, 그렇게 말하는 아이에게 웃어보였다. 이 고백이 농담이라고 생각하는, 사랑이 아니라 좋아하는 것 뿐이라고 생각하는, 아이의 솔직한 마음도 잘 보였지만 메르시는 굳이 정정해주지 않았다. 당신을 사랑하는 거라고 고백할 용기가 메르시에게는 없었다. 하나가 화를 냈던 그 날에도 메르시는 고칠 생각보다는 이제 돌이킬 수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 생각을 한 자신으로 인해, 더욱 고백을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상황 속에서도 나쁜 습관들을 고칠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던 것이다. 이런 나도 사랑해 줄거냐고 비참하게 묻거나 고백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순진하고 어린 그 아이는, 이런 박사님도 박사님이에요! 라고 말하겠지. 그 말이 시간이 흐를수록 얼마나 잔인해질 지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는 채로. 나중에는 언제까지 이런 당신으로 살 거냐고 물으며 화를 낼 아이의 모습이 선했다. 그러니까, 애초에 사랑하지 않고 끝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주사기를 다 부러트리며 화를 내는 아이가 조금 괘씸하기도 했다. 직접 죽여 봤어요? 그 말에 아이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래, 그 놈의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 그 표정이 평생 나를 괴롭혔다. 대부분의 환자들에게서 보이는 표정으로 도대체 왜 자신의 몸이 이렇게 됐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다. 다리가 잘리거나 몸의 일부분이 망신창이가 되어 오는 그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어쩌다 내가 이렇게 됐지, 하는 표정이다. 내 옆의 사람들이 다치는 걸 수없이 봤지만 나는 안 이럴 줄 알았는데, 하는 표정. 하나같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

 

 -어떻게 좀 해주세요, 박사님.

 

 늘 그 말을 하는 환자들을 보며 메르시는 질려버렸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당신이 무능하고 함부로 전장에서 뛰어다닌 탓이에요, 전쟁이 없었으면 당신도 안 다쳤을 걸요? 라고 말하고 싶었다. 다리를 다시 만들어 달라는 부탁에 가까운 것들을 들을 때마다 머리를 움켜쥐었다. 환자의 수는 너무나도 많았고 메르시 혼자서는 그 환자들을 감당할 수 없었다. 늘 몸에서는 피 냄새와 고름 냄새, 소독약 냄새가 함께 풍겼다. 전장에서 돌아온 사람들보다 더 지독한 냄새가 메르시의 몸에서 풍겼다. 박사님은 향수를 자주 뿌리시네요? 하나의 그 말에 메르시는 웃었다. 향수를 좋아해요. 뻔한 거짓말이었다.

 잠이 오지 않는 날이 계속되었고 이유 없이 위경련이 오거나 몸이 아픈 날이 계속되었다. 그런 날이 계속되어도 환자의 수는 줄어들지 않았다. 누워서 치료를 받는 병사들의 몸을 흔들며 당신들만 없었어도 민간인들은 다치지 않았을 거라고 외치고 싶었다. 자다가 잠에서 깨면 보이는 풍경들이 지겨웠다. 오버워치 기지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 지겨웠다. 이 기지가 없었다면 탈론도 오버워치도 전부 없었다면, 아무도 다치지 않을 수 있었는데. 머리에 총알이 박혀 이미 숨진 아기를 데려온 부모를 본 날, 메르시는 마약성 수면제를 먹을 수밖에 없었다. 아이와 부모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고 아무 말도 해줄 수 없는 자신이 싫었지만 잠이 잘 왔다. 오랜만에 푹 자고 일어난 그녀는 건강해져 있었다. 아니, 건강해져 있다고 믿었다. 아기를 살리지 못하고도 잠을 잘만 잔 자신이 싫었지만 수면제 탓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늘 수면제를 먹는 날이 계속되었다. 잦은 수면제로 인해 위경련이 올 때면 진통제를 먹었다. 가끔씩은 사탕을 씹어 먹듯 마약성 진통제를 씹어 먹었다. 레나에게 주려고 놔둔 진통제도 씹어 먹었다. 가운을 벗지 않는 날이 늘기 시작했다. 팔에 있는 주사자국과 칼자국은 숨길 수 없는 수준이 되어갔다. 가운을 벗지 않고 늘 일하는 의사로 칭송받기 시작했다. 그저 말없이 있는 날들이 늘어갔다. 입에 문 담배가 입술까지 타들어가는 것도 모른 채 앉아있던 적도 있었다. 그래도 늘 잠은 잘 잤다. 그 아이만 보면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레나 옥스턴, 늘 이런 기분이었나요. 불안이 없는 삶이 너무나도 불안했다.

 

 *

 

 늘 어떻게 고백하면 좋을까, 생각했었다. 박사님, 좋아해요. 박사님, 사랑해요. 이런 박사님의 모습도 전부 다 사랑할 수 있어요. 박사님, 자기 몸에 이러는 짓 안 하면 안 될까요? 수많은 멘트, 수많은 말과 행동, 이벤트. 머릿속에서 가장 좋은 상황들을 시뮬레이션 해보고 실행하기 바로 전까지 가본 적도 있었다. 그러나 늘 말하지 못했다. 고백해도 어쩐지 받아줄 것 같지 않아서, 박사님은 늘 나에게 웃어주지만 거리를 두는 것 같아서, 그래서 고백할 수 없었다. 이런 모습까지 사랑한다고 말하면 고백을 받아줄까? 그런 생각도 했었다. 그렇지만 뭔가 박사님의 모든 모습을 사랑한다고 하는 것은 박사님의 모든 모습을 이해한다는 뜻이 아닐까? 생각은 늘 거기서 멈추고는 했다. 나는 박사님의 모든 모습을 이해하고 있을까?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늘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맨손으로 사람을 죽인 오늘, 하나는 그 답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저도 전쟁을 싫어해요, 박사님. 내가 이렇게 말할 때마다 박사님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어린 아이가 허울 좋은 말을 한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연구실까지 걸어가는 내내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왜 그 때 화를 냈을까, 그 때 왜 다른 말은 해주지 못했을까. 박사님이 스스로를 해치는 모습이 싫다고 생각했는데, 지금도 싫은데, 그래도 다른 말을 해줄 수 있었을 텐데. 속으로 연습했던 수많은 말들을 조용히 우물거렸다. 사랑해요, 박사님. 좋아해요, 박사님. 박사님 생각은 어때요? 저랑 사귀실래요? 박사님을 누구보닫 사랑할 자신이 있어요. 박사님의 이런 모습도 이해해주고 사랑해줄 수 있어요. 박사님, 메르시 박사님, 이 정도가 될 때까지 대체 무슨 일이 있었어요? 고개를 들었을 때, 눈 앞에는 가운을 입은 박사님이 서 있었다.

 

 -아, 박사님.

 

 모든 말들이 머릿속에서 새하얗게 사라지는 것 같았다. 낡고 색이 바랜 가운을 입은 박사님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피가 묻은 맨손으로 박사님의 오른팔을 잡았다. 누렇게 바랜 가운에 피가 묻었다. 메르시가 무슨 일이에요? 라고 묻는 동안에도 입이 잘 열리지를 않았다. 겨우겨우 박사님을 끌어안고 입을 열었다. 늘 풍기던 향수 냄새 사이로 비릿하고 역겨운 냄새가 났다.

 

 -다음에 또 그러면 제 팔에도 똑같은 짓 할 거예요. 그리고… 그리고… 박사님.

 

 

 이제는 자다 깨도 제가 늘 옆에 있어 드릴게요.




-


밑에 있는 게시물인 불안과 같이 읽으셔도 좋고 안 읽고 읽으셔도 무방하기는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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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리지드

임무 도중에 그런 그녀의 모습을 처음 봤을 때, 아멜리는 적잖이 당황했다. 그녀, 즉 레나 옥스턴이 불안에 떠는 모습. 적의 총알 한 발이 레나의 몸에 달린 장치의 테두리를 공격했을 때, 그래서 장치가 지지직거리기 시작했을 때, 레나는 그 순간 그 자리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은 채 몸을 웅크렸다. 솔직히 말해서 아멜리의 입장에서 전장 한 가운데에서 그러고 있는 건 방해가 될 뿐이었다. 장애물 그 자체가 된 그녀를 발견한 윈스턴이 방벽을 쳐서 그나마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옴닉의 증가 사태에 오버워치와 탈론은 연합 임무를 많이 하게 되었고, 서로 걸리적거리거나 문제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리퍼도 당황했는지 혀를 몇 번 찬 뒤, 적들의 머리에 총알을 박아넣었다.

 

-어이, 슬립스트립, 일어나라.

 

리퍼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지 레나는 여전히 몸을 웅크린 채였다. 어째서인지 윈스턴은 익숙하다는 표정이었고 아멜리는 리퍼에게 엄호를 맡기고, 레나를 들쳐 업어 그 자리를 떴다. 엄폐물 뒤에 레나를 내려놓은 뒤, 아멜리는 혀를 찼다. 호전적이고 명랑하던 그녀였는데, 이건 대체 무슨 경우인지 아멜리는 혼란스러웠다.

 

-이 봐, 멍청이. 정신 차려.

 

여전히 웅크린 채, 덜덜 떠는 그녀를 바라보던 아멜리는 허리를 숙여 그녀와 얼굴을 마주했다. 동공이 이리저리 흔들리는 그녀의 모습은 너무나도 낯설어서 아멜리는 욕할 생각도 잊어버린 채, 그녀의 얼굴을 쳐다봤다.

 

-저기, 멍청이. 꼬마. 레나? 레나 옥스턴? 트레이서?

 

여러 이름으로 불러도 별 다른 반응은 없었다. 눈에 띄게 흔들리는 어깨에 아멜리가 손을 대자, 그녀가 흠칫 몸을 떨었다.

 

-싫어.

-뭐? 손 대서 싫어?

-싫어. 그 곳에 돌아가고 싶지 않아. 돌아가고 싶지 않아. 돌아가고 싶지 않습니다.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이미 제정신이 아닌 것 같은 그녀를 보며 아멜리는 혀를 찼다. 뭘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메르시가 그녀와 아멜리에게 다가왔다. 아멜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메르시를 쳐다봤다.

 

-이 봐, 박사. 이 녀석 좀 데려가서 어떻게 해…

 

메르시가 그녀의 손에 알약과 물을 쥐어주는 것을 보며 아멜리는 미간을 찌푸렸다. 이렇게 정신이 나간 애는 데려가야 하는 거 아냐? 메르시는 아멜리를 한 번 쳐다본 뒤, 한숨을 내쉬었다.

 

-그럴 필요 없어요.

-뭘?

-데려갈 필요 없다고요. 가끔 이러니까, 레나는.

 

약을 삼키자, 떨림이 멎어들더니 그녀는 평소의 레나 옥스턴, 트레이서로 돌아왔다. 메르시는 그녀를 달래는 목소리로 기계에 심각한 문제는 없어 보이는데요? 윈스턴도 별 말 안했고, 라고 말했다. 그런 적 전혀 없었던 것 같은데, 라고 중얼거리는 위도우를 한 번 노려보면서. 레나는 좋았어, 다시 참가해볼까, 라고 말하며 눈에 띄게 흐르는 땀들을 팔로 닦아냈다. 몇 번의 점멸로 멀어지는 레나를 보던 아멜리는 소총을 다시 들고 메르시를 쳐다봤다.

 

-박사, 저거 뭐야?

-뭐가요? 레나의 상태요?

 

아멜리는 고개를 끄덕이려다 말고, 메르시의 손에 들린 알약을 뺏어들었다. 메르시는 별다른 저항 없이 알약을 넘겨줬다. 알약을 이리저리 살펴보며 반 정도를 쪼개 씹던 아멜리는 익숙한 맛과 생김새에 아, 라고 감탄사를 내뱉었다. 예전에 몇 번 즐겨먹던 약이었다. 메르시는 비꼬는 어조로 그리운 맛인가요? 라고 물었고, 아멜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치글러 박사, 이런 걸 멋대로 줘도 되는 건가? 의사의 처방이 잘못된 것 같은데?

-레나가 원한 일이에요.

 

그녀에게 먹인 알약은 불안을 눈에 띄게 줄여주는 신경안정제였다. 좀 약효가 강하다는 게 문제라서 일반인들에게는 잘 먹이지 않고, 주로 최전선의 병사들에게 몰래 먹이는 약이다. 양심 있고 책임감 강한 메르시가 레나에게 이 약을 먹인다는 사실은 의외였다. 그리고 그녀가 스스로 그 약을 원했다는 사실은 더욱 더 의외였다.

 

-저 멍청이가?

-이제 알았으면 가서 임무 재개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메르시는 계속 캐묻는 아멜리를 불편해하고 있었다. 이미 총성이 잦아들어 임무가 막바지에 치닫고 있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었으므로 임무를 재개하라는 메르시의 말은 저리 가라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아멜리는 자리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은 채, 메르시를 쳐다봤다.

 

-미쳤군, 오버워치도.

-저도 안 된다는 건 알지만 레나가 강력하게 원했어요. 다른 사람들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고, 모두가 자신을 믿고 있고… 미치고 싶지 않다고 했고.

 

메르시가 입을 닫자, 위도우가 메르시의 왼쪽 팔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의사 양반도 미치고 싶지 않나보지?

 

메르시가 끄응 앓는 소리를 내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당신 정말로 귀찮은 사람이네요, 그렇게 중얼거리는 메르시의 표정은 무표정이 아닌 웃음에 가까운 표정이었다. 오버워치도 많이 미쳐있군, 위도우는 그런 생각을 하며 메르시의 팔을 내려다봤다. 가운으로 덮인 팔은 사실 주사자국이 가득한 팔일 게 분명했다. 매일 모르핀을 자기 팔에 찔러대며 하루하루 버티는 의사라니, 미쳐도 단단히 미친 게 틀림 없다고 생각했다.

 

-그보다 아멜리.

-그 이름으로는 부르지 말라고 했을텐데?

-그녀가 그렇게 신경 쓰인다면 그녀한테 직접 물어보지 그래요? 엄한 사람 붙잡아서 협박하지 말고.

-신경이라, 전혀.

-전혀? 전혀요? 하아, 아멜리. 거짓말도 작작…

 

자신의 머리카락을 움켜쥐며 고개를 든 메르시의 앞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멜리는 이미 자리를 뜬 지 오래였다.

 

*

 

장난치지 마, 아멜리. 그녀는 그렇게 말했다.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물론 그것도 아멜리가 소총의 개머리판을 그녀에게 가져다대기 바로 전까지의 웃음이었지만. 아멜리는 불안에 떠는 레나의 모습을 본 것이 처음이었고, 잘못 본 건 아닌지 시험해보고 싶어졌다. 놀러와, 라는 한 마디에 레나는 쉽게 아멜리의 방으로 들어왔다. 별일이네, 자기! 라고 말하며 방으로 들어온 레나는 평소와 다름 없는 명랑한 모습이었다. 아멜리가 저번에는 무슨 일이었던 거지? 라고 묻자, 레나는 눈에 띄게 당황하기 시작했다. 횡설수설 아무 말이나 뱉어내는 레나에게 아멜리는 소총을 들고 다가가 설명을 할 수 없으면 보여줘, 라고 말했다.

 

-장난치지 마, 아멜리.

-난 장난 아닌데?

 

개머리판이 레나의 몸에 달린 장치를 내려치려고 했고, 개머리판이 장치에 닿기 바로 직전에 아멜리는 휘두르던 팔을 멈췄다. 레나는 방 구석에 주저앉은 채, 팔로 장치를 가렸다. 고개를 숙인 채, 저번처럼 어깨를 떠는 레나를 아멜리는 가만히 내려다봤다.

 

-이봐, 이제 일어나시지. 네 말대로 장난이었어.

 

예상대로 레나는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움직임 없이 몸을 떨며 뭔가를 중얼대기만 하는 레나를 아멜리는 가만히 쳐다봤다. 너무나도 약한 그녀의 모습이 아멜리는 실망스러웠다. 늘 자기를 변화 시키겠다며 지킬 수 있다며 오버워치로 돌아오라던 밝은 음성이 떠올랐다. 그랬던 그녀의 나약한 모습은 실망스러웠다. 하지만 한 편으로 아멜리는 그녀에게 동질감을 느꼈다. 말도 안 되게 밝아 보이던, 자신과 전혀 다른 사람 같았던, 그런 레나가 벌벌 떠는 모습이라니. 너도 나와 별다를 게 없는 사람이었네. 아멜리는 미소 지었다. 그녀가 그토록 보고 싶어했던 환한 미소였는데. 레나는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였다.

 

-이봐, 장치는 전혀 부서지지 않았어.

-돌아가고 싶지 않아. 윈스턴, 도와줘. 난 어디 있어? 이제 나도 모르겠어.

-이런 상황에서까지 고릴라 찾기야?

 

아멜리는 한숨을 한 번 내쉰 뒤, 준비해둔 알약을 입에 물과 함께 물었다. 레나의 고개를 억지로 들어 레나의 입에 알약과 물을 밀어 넣자, 몇 번 혀로 물을 뱉어내며 저항하던 레나는 이내 몸에서 힘을 뺀 채 움직이지 않았다.

 

-넌 여기 있어, 멍청아.

-아멜리? 너 왜 여기 있… 너 방금 대체 뭐…

 

그녀는 말을 잇지 못한 채, 새빨개진 얼굴을 감추기 위해 장치를 가리던 양 손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그게 그렇게 부끄러울 일이야? 피식 웃는 아멜리를 보고 레나는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자기, 방금 웃은 거야?

-글쎄? 그보다 레나.

-응?

-이런 맛없는 약이 다시는 내 입에 들어오게 하지 말아줬으면 좋겠는데.

-그렇지만…

 

망설이는 표정을 짓던 레나는 잠시 뒤,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알았다고! 라고 밝게 말하는 모습은 평소의 레나 그 자체였다. 그렇지만 수틀리면 또 아까처럼 되겠지, 아멜리는 레나가 거짓말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너랑 나는 이제 같은 거니까, 아멜리는 레나에게 보이지 않도록 입을 가린 채, 미소 지었다. 재미있네,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그보다 아멜리.

-왜.

-아까 그거 한 번만 더 해주면 안 될까?

 

때가 되면 또 하게 될 일이 오겠지. 그렇지만 키스 한 번 하자고 자신의 기계를 부술 만큼 그녀는 용감하지도 멍청하지도 않다. 아멜리는 밝기만 하지 않은, 이중적인 그녀의 모습을 떠올리며 하하, 하고 크게 웃었다. 크게 웃는 아멜리의 모습에 레나는 당황해 응? 하는 소리를 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안 돼.

 

재미있는 건 다음으로 남겨둬야지. 아멜리는 팔에 돋은 소름을 쓸어내리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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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리지드

어느 날, 편지가 도착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올 편지가 몇 개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나는 그 편지를 보낸 사람을 보고 매우 놀랐다. 그것은 하나에게서 온 편지였다.

 

*

 

메르시 박사님께, 박사님 안녕하셨어요. 저 하나인데, 잊지 않으셨죠? 저는 아직도 오버워치 내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편지는 박사님에게 돌아오라고 말하는 편지도, 박사님을 찾으러 가겠다는 편지도, 박사님이 위험하다는 편지도 아니니 안심하세요. 모든 상황과 경우의 수에 대해서 생각하실 필요 없어요. 이건 그냥 제가 박사님께 보내는 편지니까요. 박사님이 스위스에 계실 거라고 생각하는 간부들과 요원들은 전부 박사님을 스위스에서 찾고 있어요. 저는 박사님이 혼자 방에 틀어박혀 도망칠 궁리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요. 박사님은 이 곳에서 봉사를 하고 계신 거죠? 아이들이나 다친 사람을 돌보고 있겠죠. 분명 그럴 거라고 믿어요. 제가 사랑한 박사님은 그런 사람이니까요.

박사님이 오버워치 내에서 도망친 날을 기억합니다. 탈출이나 이동이나 탈퇴나 다른 표현들을 많이 떠올려 봤지만 스스로 도망이라고 생각하실 것 같아요. 그래서 도망이라고 할게요. 몇몇 요원들은 박사님이 오버워치라는 집단에 염증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저도 레나 언니도 아마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고 생각해요. 파라 언니가 박사님이 연구실에 앉아 머리를 쥐어뜯고 있는 걸 봤다고 말해줬어요. 어제 진찰한 사람이 내일 죽어서 돌아오고, 그 사람을 살리면 내일 다쳐서 돌아오는데, 솔직히 박사님이 어느 정도 힘들었을지 짐작은 안 가도 무슨 생각을 했을지는 짐작이 가요. 발키리 슈트도 사람을 살리는 기술도 카두세우스 지팡이도 그걸 위해 만들어낸 게 아닐 테니까요. 박사님, 아직도 치료에 대한 연구를 하고 계시는지는 모르겠지만 연구를 계속 해주세요. 어딘가에 악용될 거라는 생각을 또 하지 마시고, 계속 하세요. 전 자신의 신념대로 행동하는 박사님을 좋아하거든요. 오버워치의 요원이라면 자신의 신념대로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박사님이 도망치기 일주일 전, 박사님의 연구실에 몰래 들어가 봤어요. 이불만 덮어주고 오려고 했는데, 박사님 썩어가는 사람을 되돌리는 것에 대해 연구하고 계셨죠? 모리슨 아저씨가 알게 되면 좋아했을 거예요. 기대할까 봐, 말하지 않은 것 다 알아요. 그 연구를 계속 하면 좋겠어요. 그리고 계속하고 있을 거라고 믿어요.

박사님이 오버워치를 떠나고 나서 많은 변화가 생겼어요. 요원들은 기본적인 자가치료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전 이제 붕대도 감을 줄 알고, 무슨 약을 언제 먹어야 하는지도 알게 되었어요. 남은 의료진들은 더욱 분주해졌지만 한 편으로는 사명감을 많이 느끼는 것 같아요. 박사님, 그러니까 박사님, 걱정하지 마세요. 전 제 몸을 챙길 줄 알아요. 그리고 박사님이 떠나시고 나서 사람들이 몸을 사리고 있어요. 군인으로서 좋은지는 잘 모르겠지만 전 좋아요. 박사님, 박사님이 떠나고 나서야 이렇게 긴 편지를 쓰게 된 점 유감이에요. 전 늘 박사님에게 긴 편지를 쓰고 싶었거든요. 이런 내용이 든 편지 말고, 아시죠? 알고 계시는 거였으면 좋겠어요. 사랑해요, 박사님. 이 말을 하기 위해 이 편지를 쓴 건 아니지만 이 말을 하고 싶었어요. 박사님, 영원히 오버워치에 돌아오지 않으셔도 좋아요. 연구도 치료도 계속하지 않으셔도 좋아요. 그게 박사님이 선택한 거라면 뭐든 좋아요. 그러니까, 원하는 대로 하세요. 박사님, 괜찮다면 답장 해주세요. 답장 안 해주셔도 좋아요. 하지만 전 언제든 답장 기다릴게요.

추신 : 박사님, 저는 요새 감기가 걸렸어요. 감기약 같은 건 스스로 먹을 줄 알지만, 전 가끔 감기약을 제 손 위에 하나씩 올려주며 언제 먹을지 알려주던 그 목소리가 그리워요. 그것뿐이에요.

 

*

 

근처 가게에서 동전 몇 개를 주고 산 편지지를 꺼내들었다. 연구서 말고 무언가 적어본 적은 너무 오랜만이어서, 더군다나 편지는 더욱 오랜만이어서 무슨 말을 써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편지지라니, 너무나도 어색했다. 편지지를 펼치고, 잉크와 펜을 꺼내든 다음, 생각나는 말을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하나. 메르시입니다. 저도 제 답장도 이제 더는 기다리지 마세요. 대신 저를 찾아오세요. 제가 할 말은 이것뿐입니다.

추신 : 하나양, 괜찮다면 기다릴게요. 안 오셔도 좋아요. 하지만 전 언제든 기다릴게요.

 

두 줄 정도의 짧은 편지를 봉투에 넣어 우편함에 집어넣었다. 매우 짧았지만, 그렇지만, 그녀가 할 말은 이게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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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상으로 향하는 문을 열었다. 옥상 위에는 먼지와 굴러다니는 담배꽁초, 담배꽁초를 버리는 낡은 통조림캔 등이 있을 뿐이었다. 인기척은 없었고, 저격에 방해가 될 요소도 없었다. 문을 닫은 뒤, 미리 복사해둔 열쇠로 문을 잠갔다. 이제부터 옥상은 사용금지야, 혼잣말을 중얼거린 뒤 맞은편 빌라가 잘 보이는 곳으로 갔다. 옥상 바닥에 배를 맞댄 채, 누웠다. 등에 맨 저격소총을 꺼내 어깨와 팔 사이에 끼웠다. 익숙한 감촉과 자세였다. 가끔 옥상 위에 있는 하얀 콘크리트 먼지와 흙먼지들이 날렸다. 배와 맞닿은 옥상의 바닥 부분은 차갑고 까칠했다. 모래먼지가 들어갔는지 눈이 가려워 눈을 몇 번 비볐다. 그러나 이내 이런 것 가지고 가려울 리가 없지, 하는 생각에 헛웃음이 나왔다.

 

 목표물은 지금 있는 옥상 맞은 편 빌라 602호에 살고 있는 여자다. 이름은 기억 안 나고 나이도 기억 안 나고 얼굴이나 기억이 날까 말까 하다. 사실 탈론이 사전에 주는 목표물에 대한 정보는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었다. 우리가 나쁜 놈인 건 세상 모두가 알고, 어찌됐건 목표물을 죽이기만 하면 그만인데 잠입할 것도 아니면서 왜 정보를 알아야 하지? 탈론 상부는 절차상으로는, 하면서 늘 정보들을 건네줬다. 어찌됐건 가서 죽이면 그만이다. 총을 쏴서 목표물이 심장이나 머리를 맞고 단번에 쓰러질 때의 쾌감. 그 쾌감을 위해 늘 임무를 할 뿐이다. 그리고 그 쾌감이 나를 여기까지 오게 했으며, 그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내게 별명을 지어주도록 했다. 위도우 메이커. 탈론 최고의 암살자이자  저격수. 나쁘지 않은 별명이지,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어깨를 잠깐 으쓱였다.

목표물의 여자에게 총구를 들이댄 뒤, 방해되는 것이 없는지 살폈다. 특수 강화된 총알은 강화유리를 뚫고도 여자의 머리에 단박에 박힐 수 있는 물건이었다. 조준경 및 확대경을 통해 여자를 쳐다봤다. 신기한 헤어스타일이었다. 어디서 많이 본 머리인데. 그러다 이내 아, 하고 짧은 목소리를 흘려보냈다. 주변에 아무도 없다고는 하지만 암살 중인데 저도 모르게 아, 하는 소리를 내다니. 그 사실에 놀라 입을 다문 뒤, 잠시 주위를 둘러봤다. 방해되는 사람이나 요소는 여전히 없었다. 목표물은 계속 거실에서 통화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놓칠 걱정도 없었다. 언제라도 총구를 들이대고 쏘면 그만이었다. 그 아이를 닮았군. 이번에는 속으로만 중얼거렸다. 레나 옥스턴, 트레이서, 그 아이를 매우 닮은 목표물을 보며 미소 지었다. 재미있게 됐어. 저렇게 닮은 건 또 처음 보겠군. 조준경으로 레나를 닮은 아이가 무얼 하는지 지켜봤다. 전화 하는 내내 손을 한시도 가만 놔두지 못하고, 가끔씩 방방 뛰기도 하는 모습은 레나 그 자체였다.

 ‘자기, 저격은 잘하면서 다트는 못해?’

 흠칫 놀라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기억 속에 있던 목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린 것 같았다. 그럴 리가 없지, 그 아이가 왜 여기에 오겠어. 저격과 다트는 다르다는 말에도 깔깔대며 웃던 그 아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총구를 들이대자, 그제야 귀여워서 웃은 거야, 라는 말을 하며 점멸로 사라지던 모습도 함께 떠올랐다. 매우 정신 사납고 시끄러운 아이였지.

 전화 통화를 하는 목표물에 총구를 제대로 겨눴다. 너무나도 닮아서 혹시 그 멍청한 레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잠깐 하다가 웃음이 터져 버렸다. 그럴 리가 없지, 그럴 리가 없어. 호흡을 멈춘 뒤, 목표물을 향해 총구를 당겼다. 입에서 장난처럼 슈욱 하고 총알이 날아가는 소리를 흉내냈다. 시시하리만치 금방 쓰러지는 목표물은 너무나도 평범한 사람의 모습 그 자체였다. 점멸 같은 걸 쓰거나 재빠르게 피하거나 할 리가 없었다. 이제는 그럴 리가 없어. 어깨에 저격소총을 맨 뒤, 와이어를 통해 다른 건물로 재빠르게 이동했다. 몇 번 발을 헛디뎠다. 쓰러진 목표물이 보이지 않을 만큼 와서야 숨을 쉴 수 있었다. 길게 호흡을 마시고 뱉기를 반복했다. 요새 일처리 제대로 안하는 것 같던데, 리퍼의 비꼬는 목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것 같았다. 레나 옥스턴, 너를 내 손으로 죽인 기분이 들어. 하지만 그럴 리가 없지. 그럴 리가 없어. 등에 맨 저격소총이 무겁게 느껴졌다. 아무리 호흡을 해도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 기분이었다. 그 여자는 레나일 수가 없었다.

 너는 이제 없는걸. 너는 죽어버렸잖아.

 나는 그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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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멜리는 나아지는 중이었다. 신경조작과 세뇌가 서서히 풀려가는 중이었고, 감정이나 기억들도 조금씩 되살아나는 중이었다. 나아진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더군다나 아멜리는 오버워치의 새 요원이 될 수 있는 능력이 가진 사람이었다. 그러나 모든 일은 뜻대로 돌아가지 않는 법이고, 아멜리의 회복 그 자체는 오버워치 내에서 새로운 문제가 되기 시작했다. 돌아오는 감정과 기억 때문에 미쳐 버리면 어떡하죠? 메르시는 윈스턴의 팔에 기댄 채, 자주 한숨을 내쉬고는 했다. 회복을 시켜줘도 되는가, 하는 고민 속에서 메르시는 고통스러워했다. 모두가 메르시의 딜레마를 잘 알고 있었다. 무엇이 그녀에게 더 나은 방향인지 주변 사람들 모두 알 수 없었다. 사실은 모두가 알 수 없다는 생각만 할 일은 아니었다. 답은 간단했다. 수많은 민간인이 죽거나 그녀 한 명이 죽거나.

오버워치 내에서 위도우 메이커, 이제는 아멜리가 되어가는 그녀에 대해 얘기하는 사람들은 점점 더 많아졌다. 그녀가 나아지는 척을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의문과 그녀가 나아지기는 할까? 하는 의문. 그리고 사람들은 제라드를 떠올리며 고개를 내저었다. 가엾은 제라드, 라고 중얼거리는 사람들도 많았다. 가엾은 제라드, 라는 말 뒤에는 어쩔 수 없다는 듯한 어조의 수식어 두 마디가 따라붙었다. 가엾은 아멜리.

 

트레이서는 가엾은 아멜리, 라는 말을 더욱 자주 하는 사람이었다. 수많은 요원들이 트레이서에게 그 여자와 너무 가까이 하지 마, 라고 말했지만 그녀는 늘 괜찮다, 고 말했다. 어찌됐건 아멜리를 오버워치까지 데려온 것도, 치료를 할 결심을 하게 한 것도, 트레이서였으므로 요원들은 그 이상의 충고나 말을 하지는 않았다. 아멜리가 탈론을 떠나던 날, 트레이서는 아멜리의 양손을 꼭 잡으며 모든 게 잘될거야! 라고 했다. 자신의 손을 잡고 뛰어가는 트레이서에게 아멜리는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아마 잘되지 않을 거야, 알고 있지?

 

트레이서는 그 날의 일을 떠올리는 중이었다. 아마 잘되지 않을 거야, 알고 있지? 그 말에 트레이서는 몇 초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잘될 리가 없다는 걸 트레이서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늘 그랬듯 트레이서는 아멜리를 향해 부드럽게 말했다. 나도 잘 알고 있어. 하지만 봐, 해결사가 왔어. 트레이서가 이 날의 일을 떠올리게 된 건 지금 아멜리의 상태 때문이다. 트레이서는 아멜리의 양손을 뒤에서 붙잡은 채, 아멜리의 등에 머리를 기댔다. 트레이서가 잡은 아멜리의 손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기억과 감정이 하나씩 돌아올 때마다 아멜리는 자신의 손을 저주했다. 이 손은 총에 너무 잘 길들여져 있어. 메르시는 위험이 될 수 있는 모든 도구를 당분간 아멜리의 주변에서 제거하라고 했지만 트레이서는 그러지 않았다. 아멜리가 빵에 버터를 바를 칼이 필요해, 라고 말하면 어김없이 칼을 구해다주고는 했다. 그 칼이 버터 대신 다른 것들을 자를 거라는 걸 알면서도 그렇게 했다. 아멜리가 칼을 가져다주기를 원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다가 아멜리가 스스로 그만둘 때까지는 원하는 것을 들어줄 셈이었다.

 

-나는 총에 잘 길들여져 있는 네 손을 좋아했어. 넌 정말로 총을 잘 쐈거든. 점멸하는 나를 몇 번이나 죽일 뻔하기도 했지.

 

트레이서가 아멜리의 뒷목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아멜리의 손에는 여전히 칼이 들려있었다.

 

-이젠 그러지 않으면 되잖아. 그렇지?

 

아멜리는 고개를 왼쪽으로 살짝 돌려 트레이서의 얼굴을 바라봤다. 변함없이 웃는 표정에 언제 공격해도 공격이 통할 것 같은 허술한 얼굴. 그래도 그렇게 약하지만은 않아서 영원히 죽지는 않을 얼굴. 아멜리는 한숨을 내쉬었다.

 

-언젠가는 누가 너의 시간역행장치에 한 발 먹이고 말거야.

 

넌 그만큼 허술하니까, 그렇게 중얼거리고 아멜리는 웃었다. 트레이서는 그럴 수 있는 사람은 아멜리 뿐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난 누구에게도 쉽게 빈틈을 허락해준 적이 없어. 그리고 넌 탈론 최고의 암살자지. 탈론에서나 어디에서나 그녀를 능가하는 저격수나 암살자는 없었다. 고도로 훈련받은 그녀는 완전히 회복된다고 해도 최고의 암살자가 될 것이다. 완전히 회복된 그녀가 암살자가 되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면, 트레이서는 온전히 그녀의 선택을 존중해줄 생각이었다. 뭐든지 네가 원하는 대로 하는 거야, 예전이랑 변함없이 너는 영원히 네가 원하는 걸 하면서 사는 거야. 원해서 암살을 하다 이제 그럴 수 없게 된 아멜리에게, 그녀는 그런 잔인한 말을 하기도 했었다.

 

-만약 오래전으로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행복했을까? 이런 일도 없었을까?

-너 치고는 너무 감상적인 말 아냐?

 

감정이 돌아오고 있어? 라고 농담을 한 뒤, 트레이서는 크게 웃었다. 트레이서는 해맑은 표정으로 누군가가 들으면 잔인하다고 할 말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

 

-그 시절 네 옆에는 제라드가 있었잖아. 우린 서로 사랑할 일도 없었을 거야. 행복했을까? 나는 잘 모르겠는데.

 

아멜리가 오른손에 든 칼을 한 바퀴 빙 돌리더니, 트레이서의 팔을 밀쳐내고 칼이 든 팔을 트레이서의 눈앞까지 들이밀었다. 거의 찔리기 직전까지 다가온 칼에 트레이서는 한 쪽 눈을 반쯤 감았다 떴다.

 

-하지만 그 제라드는 내가 죽여 버렸지. 다른 사람들을 죽인 것처럼.

 

트레이서는 칼의 날 부분을 조심스레 손으로 잡았다. 칼을 바닥에 내려놓은 뒤, 한숨을 푹 내쉬며 칼자국이 난 아멜리의 팔을 부드럽게 감싸쥐었다.

 

-칼 같은 건 조금 평범하게 줄 수 없어?

-방어 훈련도 되고 좋잖아, 안 그래?

-전혀.

 

칼자국 위로 트레이서의 손이 조심스레 스쳐 지나갔다. 아멜리의 미간이 가끔씩 찌푸려졌다. 상처가 쓰라린 것 같았다. 아픈 걸 알면 하지를 말아야지, 트레이서는 몇 번 잔소리를 하다가 아프다는 걸 느끼게 되었다는 건 좋은 건가? 라고 혼잣말을 했다.

 

-치글러 박사가 화내겠군. 난 그 사람 잔소리가 세상에서 제일 싫더라고.

-으음, 확실히 그렇기는 해.

-잔소리, 피하게 해줄 수 있어?

-하지만 치료는 받아야지. 그 사람 잔소리 피하기 힘든 거, 자기도 잘 알잖아?

 

아멜리는 자신의 팔을 바라보다가 다시 고개를 들어 트레이서의 어깨에 얼굴을 기댔다. 트레이서의 귀에 아멜리의 속삭임이 들려왔다.

 

-그건 나도 잘 알고 있어. 하지만 해결사가 있잖아?

 

응, 트레이서는 그렇게 대답하는 수밖에 없었다. 잔소리든 뭐든 잘되지 않을 거라는 건 잘 알고 있지만 별 수 없었다. 이제 아멜리에게는 남은 게 얼마 없으니까. 그녀는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는 사실이 명백할 때조차 이렇게 말해야만 했다. 해결사가 왔어, 아멜리.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도 아멜리는 그 말을 원했다. 네가 그 말을 원하니까, 트레이서는 아멜리의 팔에 입을 맞췄다. 이제 아멜리에게 남은 건 나밖에 없으니까, 트레이서는 그 사실이 슬프면서도 한 편으로는 너무나도 기뻤다. 가엾은 아멜리, 그 말과 함께 트레이서는 그녀를 천천히 안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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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이 아닌 사실은 정확히 지칭할 수 있는 어떤 날부터 송하나는 탈론이라는 조직에 대한 의문과 오버워치라는 조직에 대해 의문을 느끼기 시작했다. 탈론과의 교전 중, 송하나의 메카가 파괴된 날이었다. 탈론의 요원은 너무나도 어려 보이는 송하나가 오버워치라고는 생각하지 못 했고, 송하나에게 여긴 어린아이가 있을 곳이 못 된다, 고 말했다. 그런 요원을 오버워치 요원이 죽였을 때, 그 때부터 송하나는 의문을 느끼기 시작했다. 탈론은 세뇌된 인간들이 아닌 걸까, 탈론은 잘못되고 사악한 생각에 찬 사람들의 모임이 아닌 걸까. 오버워치의 고위 간부들은 송하나가 세뇌 당하지 않았다는 치글러 박사의 진단서에는 동의했으나 당분간은 전투에 부분적인 참가만 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송하나는 자신을 믿지 못하는 간부들에게 대단히 기분이 나빴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사실, 정말로 송하나는, 탈론이 잘못되지 않은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으므로.

 

-모리슨 아저씨, 어떻게 생각해요?

-아아, 글쎄. 아까 보니 그 요원은 훈장 수여식을 받고 있더군.

-아저씨, 말 돌리지 말고.

 

송하나가 웃으며 모리슨을 쳐다봤을 때, 머리가 이미 새하얘질 대로 새하얘진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한숨을 내쉬는 모리슨을 웃으며 쳐다보던 송하나는 웃음기가 싹 가신 얼굴로 이제 말해보세요, 라고 했다. 오버워치가 가장 잘 나가던 시절이나 지금이나 레예스는 늘 모리슨을 보며 말 돌리지 말고 설명해 봐, 라는 말을 자주 했다. 이제 리퍼가 된 레예스는 모리슨의 등 뒤로 다가와 너희들이 날 이렇게 만들었어, 라는 말을 하고는 했다. 모리슨, 말 돌리지 말고. 리퍼의 샷건에서 나오는 총알은 자주 모리슨의 얼굴 옆 허공을 스치고는 했다.

 

-사실 누가 나쁘고 누가 착하고 같은 건 없어. 하나야, 그러니까 말이지.

 

그저 신념이 다를 뿐이란다, 모리슨은 그렇게 말했다. 송하나는 그 말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봤다. 어느 쪽도 나쁜 게 아니고 그저 신념이 달라서 두 조직이 나뉘어졌다는 사실에 대해서. 아, 모리슨. 송하나는 고개를 저으며 탈론, 이라고 작게 중얼거렸다. 오버워치 요원들이 자신의 말을 듣기라도 한다는 듯 아주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 말은 두 조직 다 나쁘거나 착하다는 거죠? 모리슨은 그 말에 대답해주지 않았다. 송하나는 탈론의 조직원이 된 모리슨을 상상해봤다. 어째선지 리퍼의 모습이 떠올랐고, 송하나는 그 사실이 참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

 

사람들은 치글러 박사가 송하나의 진단서를 일부러 고쳐서 제출한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그게 아니면 송하나가 치글러 박사를 속인 게 아닐까? 하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치글러, 닥터 메르시는 그 어느 쪽에도 동의하지 않았다. 하나에게 세뇌의 흔적이 전혀 없었으며 메르시는 하나가 충분히 그런 고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다른 요원들의 손을 밀쳐내며 당신들도 다 똑같다, 고 하나가 외쳤을 때조차 메르시는 하나를 검사해야겠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너무 일찍 전장에 합류한 탓이지, 결국 이렇게 됐군, 그런 것들을 생각하고 있었을 뿐.

 

-박사님, 제가 잘못된 건가요?

 

송하나가 이렇게 말할 때마다 메르시는 무슨 말을 해주는 게 가장 좋을까, 에 대해서 생각했다. 메르시는 늘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거나 안아주며 귀에 같은 말을 속삭였다. 늘 같은 말이었다.

 

-하나는 잘못되지 않았어요. 그래서 미안해요.

 

그래서 미안해요, 송하나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고개를 끄덕이며 메르시의 품에 파고들었다. 다들 알고 있었군, 다들 잘 알고 있었어. 송하나는 기지 안에서 훈장을 수여받은 그 요원이 지나갈 때마다 요원을 노려봤다. 그러나 요원에게 싸움을 걸지는 않았다. 송하나는 이제 기지 안에서 소리를 지르거나 요원들을 욕하지 않기로 했다. 그저 조용히 앉아서 밥을 먹었고, 가끔 농담을 하거나 웃기도 했다. 예전으로 돌아간 하나를 보며 요원들은 안심했다. 트레이서는 그런 하나의 어깨에 손을 얹거나 가끔 재미있는 거 보여줄까? 라고 말하며 점멸이나 시간 역행을 통한 묘기를 선보였다. 하나는 웃었다. 트레이서는 웃으며 금방 회복했네? 라고 말하다가 문득 탈론의 아멜리를 떠올렸다. 일전에 트레이서를 향해 아멜리는 웃으며 말했다. 전부 알아냈네, 이제 어른이 될 수 있겠어? 탈론도 별로 나쁘지 않다는 걸 깨달았을 때, 트레이서는 아멜리의 피곤한 표정을 끝없이 바라봤다. 너는 이미 어른이네, 트레이서는 그 말밖에 할 수 없었다. 금방 어른스러워졌네, 트레이서는 하나에게만 들릴 목소리로 가끔씩 그렇게 속삭여줬다.


언젠가 네가 알아서 선택하게 되겠지, 아멜리는 그런 말을 트레이서에게 했었다. 물론 송하나는 그 말을 들은 적이 없지만 선택이라는 것을 해야한다고 생각했다. 기지 안에서 예전처럼 살기로,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는 것처럼 보이도록 살기로 했다. 모리슨, 그저 신념이 다를 뿐이라고 했죠? 송하나는 피식거리며 웃었다. 그럼 나도 내 신념을 선택하면 되겠네. 그런 생각을 했을 때, 송하나는 사실 자신이 어디에도 속해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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