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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10. 2. 03:58 2차창작[팬픽션]/뱅드림

퐁당퐁당보다는 풍덩풍덩에 가까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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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사토는 처음에 별 생각이 없었다. 카논이 큰일 났다며 자신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도 카논이 호들갑을 떠는 건 늘 있는 일이라 생각했다. 그 뒤에 카논이 카오루가 여행을 갔다는 말을 했을 때도 그렇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 다음에 자전거 여행을 떠났다 했을 때는 여전히 이상한 아이네, 하고 생각했다. 마지막으로 카논이 큰 소리로 자전거 하나만 가지고 여행을 떠났다 외쳤을 때는 미친 거 아니야, 하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어느 날 사라졌다고…”

“하로하피 멤버 모두가 있는 채팅방에 잠시 여행 다녀올게, 라는 말만 남겨놓고 사라졌는데 그런데 사라져서…”

 

횡설수설하는 카논 옆에서 미사키가 하하, 하고 웃음을 흘렸다. 웃었다기보다는 할 말도 없고 지을 표정도 없으니 웃어보았다는 것에 가깝다.

 

“그게 저도 어이가 없는데요. 카오루 씨 부모님이 와서는 자전거만 가지고 나가더니 안 돌아오는데 어디 갔는지 아냐고 물어서… 채팅방 보여드렸더니 그냥 납득하면서 가버리셨어요.”

 

미사키는 한 번 더 웃었다. 이번에는 그 집 부모님도 딸을 닮아서 정말 이상하다, 는 뜻이 담겨 있었다.

 

“카오루가 가끔씩 이상 행동을 보인 적이 많아서 익숙하신 것 같아. 갑자기 학교의 왕자님이 되었는데도 신경 안 쓰더라고. 그냥 그런 분들이셔.”

“치사토 쨩, 어쩌면 좋지! 자전거만 가지고 나간 지 벌써 삼일이 지났는데 어디서 쓰러져있거나 위험한 사람에게 잡혀갔다면 어떡해. 돈은 가져간 걸까.”

“그보다 라이브 스케줄은 괜찮은 거야?”

“아, 한동안 별다른 예정은 없어요. 카오루 씨 이번에 신작 연극 한다고 바빠서 잠시 미뤄뒀거든요.”

 

그보다 카오루 씨 걱정은 별로 안 하시네요, 라는 말과 함께 미사키가 음료를 한 모금 마셨다.

 

“치사토 쨩은 걱정되지 않아?”

“아니, 뭐. 카오루가 그랬다고 하니까 어쩐지 걱정이 안 되네. 예전에는 연기에 도움이 될 것 같다면서 48시간 동안 잠 안 자기, 겨울에 얼음물로 한 달간 목욕하기, 방음시설 안에서 소리 지르는 발성 연습하기, 같은 행동들을 한 적이 있어서. 말했듯이 익숙하기도 하고.”

 

치사토의 말에 카논은 이제 좀 안심이 되었는지 자신의 앞에 놓인 찻잔을 들어 홍차를 마셨다. 홍차 밑에 가라앉아있던 조그만 잎들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그동안 치사토는 카오루가 이번에 맡았다는 연극에 대해 생각했다. 늘 같은 패턴으로 움직이는 카오루니까, 아마도 이번 연극과 관련이 있겠지. 치사토는 마야가 해줬던 얘기를 기억하려 애썼다.

 

“그러니까 마야 쨩이… 음, 이번에 카오루가 연극에서 맡은 역할이 여행객 이랬나 뭐랬나. 아마 그것 때문에 경험을 쌓는답시고 자전거만 가지고 떠났겠지 싶은데. 이 말도 안 되는 기행의 이유를 굳이 찾자면 그런 이유겠네.”

“말씀하는 게 냉정하시네요.”

“뭐, 한두 번 짜증났던 게 아니니까.”

 

냉정한 게 아니라 짜증이 난 거구나, 미사키는 생각만 하며 굳이 입 밖으로는 내지 않았다. 어쩐지 본인이 짜증났다는 사실을 알고 싶어 하지 않을 것 같기도 하고, 실제로 치사토의 표정은 짜증을 넘어 신경질로 넘어가는 중인 것 같으니까 그냥 생각만 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대신 미사키는 이 말도 안 되는 기행이 빨리 끝나야 하로하피의 일에 대해 논의할 수 있을 텐데, 왜 휴대폰을 가져가지 않은 걸까, 스케줄은 어떻게 잡아야 하나, 같은 매니지먼트에 관련된 생각을 했다. 언제 돌아온다는 언급이 없었으므로 이후 긴 시간 동안 돌아오지 않는다면 확실히 문제가 될 테니까.

 

“빨리 오는 게 좋을 텐데요.”

“뭐, 늦을수록 위험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는 하겠지.”

“아니, 그게 아니라 조금이라도 더 늦으면 코코로가 돈을 써서라도 찾을 것 같아서.”

 

미사키가 웃었다. 치사토는 지친 웃음소리와 일정 각도 이상 올라가지 않는 미사키의 입 꼬리에서 진심을 느낄 수 있었다. 카논 또한 옆에서 고개를 끄덕이며 사실은 그게 가장 큰일이네, 라고 중얼거렸다. 두 사람은 코코로… 라고 한 번 중얼거린 뒤 한숨을 내쉬었다. 한숨은 물론 미사키 쪽에서 더 큰 소리로 났다.

 

“뭐 아무튼 두 사람 다 너무 걱정하지 마. 내가 봤을 때, 멀리까지 가지는 않았을 거야. 왕복하는 거니까 돌아오는 시간 때문에 늦는 것 같아. 앞으로 삼일 안에는 돌아올 거야, 살아있다면 말이지.”

“치, 치사토 쨩…….”

“잘 아는 분이 그렇게 말하는 거니까 일단 걱정하지 않으려고 해볼게요. 코코로한테도 그렇게 말해서 안심시켜야겠고. 카논 씨도 저랑 이만 돌아가도록 해요. 하구미랑 코코로한테 말하러 가야 하니까.”

“아, 그래. 그러는 게 좋겠네. 치사토 쨩은?”

“난 차가 남은 게 아까워서 조금 더 마시다 갈게.”

 

손을 흔들며 나가는 카논과 짧게 고개 숙이는 미사키를 보며 치사토 또한 손을 흔들었다. 카페를 나서며 미사키는 문득 한 가지 의문점을 떠올렸다. 그런데 치사토 씨는 왜 짜증이 난걸까. 뭐, 카오루 씨가 조금 짜증나는 사람일 때가 있기는 하지만. 짜증이라기보다는 거의 화가 난 것처럼 보이는데. 미사키는 조금 생각하다가 다시 그 생각을 묻어뒀다. 왜인지 깊게 생각하거나 캐내면 안 될 것 같고, 지금은 다른 일이 더 중요하니까. 잠시 뒤 미사키는 그 의문에 대해 잊어버렸고, 다시는 떠올리지 않았다.

 

*

 

치사토는 확실히 짜증이 난 상태였다. 집에 오자마자, 자신의 방으로 재빠르게 올라간 그녀는 침대 위로 가방을 집어던졌다. 이성이 제어할 새도 없이 그녀의 입에서 말들이 계속해서 흘러나왔다.

 

“아, 진짜 짜증나. 세타 카오루 세상에서 제일 짜증나.”

 

몇 번 더 비슷한 말을, 그리고 가끔씩 욕을 섞어 내뱉은 뒤에야 치사토는 의자에 앉았다. 카논이 당황했던 것처럼 치사토는 자신이 평소와는 상태가 확실히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진정되지 않았고, 갈수록 욕지기가 치밀어 올랐다. 그리고 치사토는 이 감정에 대해 잘 분석할 수 있었고, 원인 또한 잘 알고 있었다. 그 원인이 싫었고 그 원인을 잘 아는 자신이 싫었다.

걱정이 되니까 짜증이 났다. 주기적으로 무모한 짓을 해대는, 마치 타이머가 있는 스위치처럼 딸깍 하고 켜지면 좀체 꺼지지 않는, 이 제정신이 아닌-치사토의 생각에 의하면-사람이 몹시 걱정 되었으므로 짜증이 났다. 할 때마다 이상한 짓을 하네, 정도면 모를까 꼭 위험을 수반하거나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은 일들을 하니 그 모든 일을 옆에서 본 치사토는 미칠 지경이었다. 실제로 예전에 극중 인물의 마음-사막을 횡단하는 인물-을 알고 싶다며 보일러를 최대로 틀거나 온천탕에 가거나 하다 열사병으로 쓰러진 적이 있었다.

 

‘살면서 본 사람 중에 가장 바보일 거야.’

 

치사토는 그렇게 생각하며 저 혼자 고개를 끄덕였다. 치사토는 바보와 천재가 밀접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시로 카오루가 가장 적합하다 생각했다. 다른 건 전부 잊고 무언가에 몰두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정말 천재에 가깝다고 할 수 있었다. 집중, 이라는 스위치가 켜지면 카오루는 이성에서 점점 멀어지고 심지어 그 스위치가 켜진 상태를 즐기고는 한다. 치사토는 노력에서 재미를 느끼는 카오루가 늘 신기했다. 천재들이란 그런 거겠지. 말도 안 되게 힘든 일들이 재미있게 느껴지고. 영원히 그 일을 할 수 있고. 그리고 그런 점이 바보 같다고 생각했다. 치사토는 앞뒤는 물론이고 코 바로 앞의 일까지 재지 않고 뛰어드는 카오루가 정말로 싫었다.

카오루의 스위치가 켜지면 치사토는 매번 혼자서 기다려야 했다. 그 스위치가 꺼지고 카오루의 마음속 불이 꺼질 때까지, 카오루의 불꽃이 촛불 정도로 안정될 때까지, 늘 혼자서 기다려야 했다. 거기에 걱정은 덤이며 짜증은 그 위에 얹어주는 보너스였다. 늘 이성적인 생각만 하는 치사토지만 가끔씩 카오루가 부러울 때도 있었다. 아마 그래서 짜증이 배로 나는 거겠지. 늘 꺼지지 않는 카오루의 불꽃 옆에서 치사토는 행여나 자신의 불꽃이 꺼지지는 않을까 초가 짧지는 않은가 애지중지 살폈다. 가끔씩 초조했는데, 그런 치사토 옆에서 카오루는 늘 환하게 웃었다.

 

“치사토, 연기라는 건 정말 재미있어. 게다가 치사토, 너라는 공주님의 훌륭한 연기를 보는 건 더욱 재미있고.”

 

카오루가 환하게 타오르는 불꽃을 내버려둔 채, 몰두하러 뛰쳐나가면 그 때부터 치사토는 그런 카오루의 뒤에 남아 대본을 읽었다. 잘될지 어쩔지 모르는 드라마의 대본을 손에 꼭 쥔 채, 한 문장 한 문장 읽었다. 이입과 몰입, 이라는 단어를 곱씹으며 대본을 넘길 때마다 치사토는 혼자 남은 방 안에서 서늘함을 느꼈다. 카오루, 너는 이입과 몰입이라는 단어를 생각하지도 않을 텐데. 늘 그런 식으로 방이 다시금 환해지기를 기다리던 중, 치사토는 언제부턴가 한 가지 소망을 갖게 되었다.

 

“그게 뭐였더라.”

 

치사토는 책상을 손가락으로 두드리며 중얼거렸다. 사실은 알고 있는데 모르는 척 하고 싶은 기분이었다. 치사토는 마음속에 떠오르는 답을 대충 구겨 어딘가에 처박아 버렸다. 소망이 뭐였는지 모르겠다, 고 몇 번 중얼거렸다. 부러 소리 내어 중얼거리니 정말 뭐였는지 까먹은 것도 같았다. 그냥 카오루가 빨리 돌아왔으면 좋겠네. 치사토는 가방 안에서 오디션용 대본을 꺼냈다. 손에 익은 무게에 늘 비슷한 역할, 조용하고 서늘한 종이의 감각. 늘 겪으면서도 좀체 익숙해지지 않는 시간 속에서 치사토는 연기에 집중했다. 집중, 이라는 단어를 마음속으로 되뇌는 자신을 느끼면서.

 

*

 

자전거를 타고 자기 집 앞까지 돌아온 카오루는 대문 앞에 멈춰 섰다. 일주일 만에 돌아온 집인데도 집에 들어서기를 망설이던 카오루는 일단 문 앞에 자전거를 세워놓았다. 카오루는 몇 미터를 걸어 자신의 옆집인 치사토의 집 앞에 섰다. 치사토의 방은 불이 꺼져 있었다.

 

“늦은 시간이기는 하지.”

 

좀 더 페달을 열심히 밟았어야 했던 걸까. 그렇지만 자아를 찾는 여행객의 역할이니까 페달을 너무 급하게 밟을 필요는 어디에도 없었는걸. 카오루는 그런 생각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대로라면 카오루는 새로운 경험이나 모험을 시도한 뒤, 집으로 돌아가 경험에 대해 곱씹어보고 신체의 감각을 최대한 기억하려 애쓴 뒤 오랫동안 잠을 잤다. 열네 시간 넘게 잠을 자고 나면 이제 모든 것이 정리되어 연기를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 들고는 했다. 카오루는 늘 그런 패턴으로 움직였는데, 어쩐 일인지 오늘은 바로 집에 가지 않았다. 카오루는 치사토의 집 앞에 선 채, 잠시 심호흡을 했다.

카오루는 일단 사과하고 싶었다. 말도 없이 떠나서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싶었는데, 사실 사과는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카오루가 늘 했던 것이다. 사과하지 않으면 치사토의 표정이 걷잡을 수 없이 무서워지기 때문에 사과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평소라면 몇 시간에서 며칠 정도면 끝났을 것이고, 아무리 무모한 일을 해도 어딘가로 갑자기 떠난 적은 없었다. 첫 날에는 무일푼 여행의 기분을 느끼면서 그런대로 움직였는데, 돌아올 때는 페달을 더 빨리 밟고 싶은 것을 참아야 할 정도였다. 카오루는 자전거로 도로를 달리는 동안 태어나서 처음으로 과하게 집중하는 자신을 원망했다. 스위치가 켜지면 바로 뛰어들어 주변이라고는 둘러보지 않는 자신이 바보 같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런 생각도 자전거를 타고 이틀이나 지나서야 떠올랐을 정도로 연기할 생각만 가득했다는 사실이 카오루의 귀를 더욱 빨갛게 만들었다. 부끄럽네, 카오루가 중얼거렸다. 치사토의 방은 불이 꺼져 있었지만 카오루는 문 앞으로 다가가 초인종을 눌렀다. 가끔씩 치사토는 어둠 속에서 연기를 하거나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기도 하니까. 카오루는 문을 열고 나오는 부모님께 실례한다고 말했다. 이렇게 늦은 시간에 실례를 하면서까지 카오루는 치사토를 지금 당장 만나야겠다고 생각했다.

 

치사토의 방으로 걸어가며 카오루는 어떤 순간을 떠올렸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치사토를 만나야겠다고 다짐한 건 도로를 달리다 어떤 아주머니를 만났을 때였다.

 

“학생, 혼자서 여행하는 건 위험하니까 조심해.”

“알겠습니다. 아름다우신 분의 말씀 꼭 새겨듣도록 하죠.”

“혼자만의 시간도 좋지만 다음에는 친구랑 같이 여행해봐. 그게 훨씬 재밌을 때도 있으니까.”

 

그 때, 카오루는 자전거의 페달을 밟으며 잠시 뒤를 돌아봤다. 아주머니에게 손인사를 하려고 그랬던 것 같은데, 결국 하지 못했다. 점점 멀어지는 아주머니를 보던 카오루는 다시 앞을 보며 혼자, 라고 중얼거렸다. 자전거를 꺼내 집을 떠날 때, 카오루는 점점 멀어지는 집을 보며 여행을 하는 인물이라면 이 순간을 소중히 여길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그 풍경을 기억하려 애썼는데, 그 풍경을 다시 떠올려 보니 거기에는 치사토의 집도 있었다. 카오루는 아, 하는 소리와 함께 페달에 얹혀있던 발을 헛디뎠고 도로 위로 넘어졌다. 가볍게 넘어진 정도라 곧바로 일어나 자전거를 세웠지만 더 이상 도로를 달릴 수는 없었다. 카오루는 그 때, 돌아가자마자 치사토를 보러 가야겠다고 다짐했다. 카오루는 치사토가 늘 혼자 남아서 무얼 했을까 생각했고, 그보다 대체 무슨 기분으로 혼자 있었을지 생각했다. 카오루는 치사토의 집이 점점 멀어지는 걸 견딜 수 없었고, 자전거를 돌려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치사토.”

 

카오루가 치사토의 방문을 열었을 때에도 불은 꺼져 있었다. 카오루는 방으로 들어선 뒤, 문을 닫았다. 카오루는 어둠 속에서 치사토가 침대에 누워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고 있는 것을 보았다. 자고 있지는 않은 것 같았다. 치사토, 라고 불렀을 때 눈에 띄게 당황하는 숨소리를 들었던 것이다. 이럴 때는 집중할 수 있는 자신이 좋은 것 같기도 하다는 생각을 하며 카오루는 조용히 침대로 걸어갔다. 카오루가 침대에 걸터앉았다. 치사토는 왜 카오루가 자신의 방에 왔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쯤 되니 짜증이 어떤 수준을 넘었으므로 멱살부터 잡고 보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습 공격하는 셈 치고 몸을 확 일으킬 생각을 하려는데 카오루가 때마침 입을 열었다.

 

“미안해.”

 

치사토는 냉철함을 유지하지 못했다. 카오루의 목소리에 울음기가 섞여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상에도 없이 빠른 속도로 몸을 일으켰고, 카오루는 잠깐 놀랐지만 자신의 바로 옆에 있는 치사토의 얼굴을 보며 다시 한 번 미안해, 라고 말했다.

 

“뭐가 미안한데?”

 

카오루에게 우는 거냐고 물어보려던 치사토는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대뜸 뭐가 미안한지부터 물었다.

 

“뭔가에 빠지게 되면 말이야. 그런 상태가 끝날 때 즈음에는 매번 같은 생각들을 했거든. 치-쨩에게 말해줘야겠다, 치-쨩에게 보여줘야겠다, 치-쨩에게 가야겠다, 같은. 그런데 자전거를 타고 달리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 그러면 치-쨩은 늘 같은 자리에서 뭘 하고 있는 거지?”

 

카오루의 말에 치사토는 마음을 들킨 것을 감추려 애쓰다 저도 모르게 어깨를 떨었다.

 

“돌아갔을 때, 치-쨩이 없으면 어떡하지? 그러면 나는 누구에게 말하고 보여줘야 하지. 나는 치-쨩이랑 함께 연기를 하는 게 좋아. 예전에도 말했지만 연기를 좋아하는 것보다 훨씬 더 너와 함께 하는 연기가 좋아. 난 늘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은 했는데, 그랬는데, 이번에는 제일 먼저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해서… 그러고 보니 늦은 시간인 것도 미안해.”

 

치사토는 카오루의 표정과 말에 집중하는 대신 자신의 마음속을 들여다봤다. 뛰는 심장이 주체가 안 되었다. 자신의 가슴께에 손을 얹어 손가락으로 피부를 문지르다 문득, 문득 마음속에서 뭔가를 찾아냈다. 며칠 전에 구겨뒀던 거겠지. 치사토는 산에 걸리기 시작하는 태양처럼 천천히 떠오르는 그것을 집어 들었다. 일출을 볼 때의 기분이 들었다. 체온이 오르는 것 같은 느낌, 뭐든 잘될 것 같은 느낌, 원하는 소망을 이룰 수 있을 것 같은 느낌, 그 속에서 치사토는 신년이라도 된 것처럼 소망을 빌었다.

 

“카오루가 내 걱정을 제일 먼저 해줬으면 좋겠어.”

 

입 밖으로 흘러나온 소망을 보며 치사토는 그것을 수습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주워 담기에는 너무 늦었고, 흘러넘치는 것만을 볼 수 있었다.

 

“내가 걱정하는 만큼 카오루가 내 걱정을 해줬으면 좋겠어.”

 

카오루가 치사토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갖다 댄다. 카오루의 손가락이 치사토의 손등에 살짝 닿았을 때, 치사토는 손을 빼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치사토.”

 

치사토는 자신의 손이 미약하게 떨리는 것을 느꼈다. 몸 곳곳에 온기가 돌았다. 카오루의 손이 천천히 올라가 치사토의 어깨를 살짝 그러쥐었다.

 

“왜 매번 나를 기다렸어?”

 

카오루의 손은 서늘해서 바깥 날씨를 짐작할 수 있었다. 어깨가 서늘해지는 것을 느끼며 치사토는 종이와는 전혀 다른 종류의 서늘함을 느꼈다.

 

“나도 카오루와 함께 연기하는 게 좋아. 하지만 그것보다, 나는 그냥… 카오루가 훨씬 좋아.”

 

치사토는 서로의 체온이 섞여 어깨와 손이 알맞은 온도로 변해가는 것을 느꼈다. 그러다 치사토는 조용해진 카오루의 얼굴을 보게 되었는데, 카오루의 얼굴은 어둠 속에서도 선명했다. 집중하는 중이었고 몰두하는 중이었다. 몰두하는 얼굴을 보며 치사토는 처음으로 화가 나지 않았다. 카오루의 눈이 향하는 곳을 보며 치사토는 카오루와 시선을 마주했다. 치사토는 눈동자에 담겨있을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며 웃었다. 치사토가 뒤늦게 어서와, 라고 했을 때 카오루의 얼굴이 다가왔다. 그 날 처음으로 치사토는 집중, 이라는 말을 떠올리지 않으며 집중하는 게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posted by 리지드
2018. 9. 30. 01:23 2차창작[팬픽션]/뱅드림

“리사 언니 말이야. 요새 대단하지 않아요?”

“이건 확실히 대단하네요.”

 

사요와 아코는 말없이 포장된 쿠키를 내려다봤다. 모두의 쿠키에는 평소보다 배로 노력이 들어가 있어 멤버마다 다른 종류의 쿠키가 포장되어 있다. 게다가 이제는 맛 또한 취미로 만들었다고 해줄 수 없는 수준이었다.

 

“내일부터 쿠키 가게를 열어도…….”

 

린코가 쿠키를 씹으며 중얼거렸다. 모두 린코의 말에 동의했다. 기합이 너무 들어간 거 아닌가, 얘기하던 중 유키나 앞에 놓인 쿠키 봉지를 보고 모두 열린 입을 다물지 못한다. 유키나는 가만히 자신의 쿠키 봉지를 들며 입을 열었다.

 

“삼색 고양이네.”

 

무미건조하기 이를 데 없는 목소리다.

 

“줄무늬마다 맛이 다르다고.”

 

어느 샌가 화장실에서 돌아온 리사가 웃으며 말했다. 아코가 놀라며 되물었다.

 

“세 가지 색깔 전부 맛이 달라?”

“응, 전부 달라. 참고로 아코한테 준 박쥐 모양 쿠키는 초코가 아니라 깨 맛이야. 처음 시도해봤어.”

“아, 진짜다. 고소하고 맛있어!”

 

아코가 쿠키를 씹으며 한껏 누그러지는 동안 사요는 쿠키 봉지들을 다시금 훑어보다 한숨을 내쉬었다.

 

“이마이 씨, 연습은 제대로 하고 계시는 거죠?”

“물론. 이것 봐.”

 

사요에게 내밀어진 악보는 온갖 필기로 가득했다. 얼핏 보니 대충 적어놓은 것이 아니라 몇 번이고 연습한 다음, 수정을 거듭해 고칠 점과 강조할 점을 적어놓았다. 사요는 머릿속으로 쿠키를 만드는 시간과 악보를 보며 연습할 시간을 어림잡아 계산해보았다. 더군다나 오늘도 리사는 타올이나 생수, 예비 악보 등 필요한 물건을 전부 가방에 챙겨왔다. 부활동이 힘들었다는 말을 했으니 부활동도 참석했으며 오늘도 액세서리는 신경 써서 했다. 저렇게 살려면 몸이 몇 개여야 하지.

 

“뭐, 연습을 열심히 하고 있다면 상관은 없지만.”

 

사요는 아무리 열심히 연습하는 자신이어도 이건 좀 무리에 가까운 수준이 아닌가, 하고 생각 했다. 사요는 연습의 양을 늘리고 싶을 때면 다른 일들을 줄이는 편이었다. 그런데 지금 리사는 모든 면에서 양이 늘어나있는 상태였다. 저걸 어떻게 감당하는 거지, 하는 의문이 사요의 머릿속을 채웠다.

 

“리사.”

“응, 유키나. 무슨 일이야.”

“왜 내 것만 쿠키 종류가 다섯 가지나 되는 거지?”

“그건 그냥 힘 좀 내봤어. 하다 보니 그렇게 됐네.”

 

유키나는 고양이 모양의 쿠키를 하나 꺼내 씹었다. 오도독 소리가 몇 번 난 뒤, 유키나가 입을 열었다.

 

“리사, 시간 분배 잘 하고 있어?”

“물론이지. 연습도 다 해왔다고 아까 말했잖아. 사요도 악보 보고는 납득했는걸.”

 

유키나가 리사의 얼굴을 쳐다본다.

 

“정말로 시간 분배 잘 하고 있어?”

 

리사가 웃었다.

 

“그럼.”

 

유키나는 턱에 손을 괴고 잠시 뭔가를 생각하는가 싶더니, 이내 공지사항을 발표한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 모두를 한 번씩 둘러봤다.

 

“리사는 오늘부터 연습 시간을 한 시간 늘릴거야.”

“에? 리사 언니만?”

“그리고 이건 개인적인 부탁이지만 리사는 다음 주에도 쿠키를 이 정도로 만들어줬으면 하는데.”

 

사요와 아코, 린코가 눈에 띄게 당황했다. 늘 알기 쉽고 올바른 결정만 하는 리더인 유키나가 갑자기 터무니없는 두 가지 사항을 공지하자, 세 사람은 혼란에 빠졌다. 그렇지만 확신에 찬, 심지어 단호하기까지 한 유키나의 말투에 세 사람은 대꾸하기를 망설였다. 유키나가 생각이 있겠지, 하는 마음에서.

 

“좋아.”

 

그리고 리사는 이 말도 안 되는 공지에 의문조차 표하지 않았다.

 

이 말도 안 되는 공지사항이 내려진 뒤로 일주일간 리사는 모든 것을 빠짐없이 해냈다. 늘어난 연습 시간도 지키고 쿠키도 똑같이 만들어왔다. 심지어 다른 것들에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유키나는 아주 가끔씩 리사를 빤히 쳐다봤다. 리사는 그럴 때마다 내가 뭔가 부족한 점이 있냐 물었고, 유키나는 리사가 그렇게 말할 때마다 고개를 저었다. 일주일이 딱 되던 날, 리사는 연습에 나오지 않았다. 몸살감기, 유키나는 그렇게 말했다.

 

“저기, 이쯤 되니까 정말로 이해가 안 가서 그러는데…”

“무슨 일이지, 사요.”

“이렇게 쓰러질 때까지 연습을 더 시키고 쿠키도 그대로 많이 만들어오라고 한 건 대체 왜 그런 건가요. 이러면 로젤리아에 더 방해가 되는 거 아닌가요. 납득할만한 이유를 듣고 싶은데.”

 

사요의 옆에서 린코와 아코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유키나를 똑바로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이지는 못했고, 사요를 쳐다보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 정도였다. 유키나는 사요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사요의 생각은 아주 타당해. 일리가 있어.”

 

그리고 유키나는 세 사람에게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사요와 린코, 아코는 그 설명을 듣고 어느 정도 납득했다. 유키나는 당분간은 각자의 연습에 치중해 개인의 스킬을 향상 시키고, 에너지도 좀 보충해서 돌아오라고 했다. 모두 그러기로 했다. 그리고 유키나는 연습실을 나와 자신의 집을 향해 걸어갔다. 그러다 자신의 집 앞에서 방향을 틀어 리사의 집으로 갔다. 리사의 방에 들어가자, 누워서 눈을 감고 있던 리사가 유키나를 보며 어색하게 웃는다.

 

“미안해, 유키나. 실망했지. 몸 관리도 노력의 부분인데.”

“물론 몸 관리도 노력의 부분이지. 그런데 리사.”

“응?”

“나도 정말 이렇게까지는 하고 싶지 않았어.”

“무슨 말이야?”

 

유키나가 한숨을 내쉬며 자신의 이마에 손을 짚었다.

 

“예전부터 리사는 뭐든지 성실하게 하려는 경향이 있고, 그러다 보니 무리하려는 경향이 있어. 예전에 몇 번 충고했어. 기억나?”

“응, 미안해.”

“사과하라는 게 아니야. 그렇게 말했는데도 리사… 일주일 전에 쿠키 만들어왔을 때 사실 조금 화나서 그런 결정 내린 거야.”

“화났었어?”

“밀어붙일 수 없을 때까지 밀어붙이면 더 이상 무리하지 않을 것 같았거든. 몸이 기억하게 하고 싶었는데, 솔직히 어느 정도 힘들면 리사가 그만둘 줄 알았거든. 아플 때까지 무리할 줄은 몰랐어. 미안해. 그 점에 대해서는 사과할게. 멤버들한테도 사과하고 왔어. 다들 어느 정도는 납득해줬어, 어느 정도지만. 사요는 한숨부터 쉬더라고.”

“하하… 미안해.”

“나한테 미안할 게 아니라 리사는 리사 자신한테 좀 미안해할 필요가 있어. 너 자신에 대해 너무 혹독하게 다룬다고.”

 

유키나의 눈매가 매서워진다. 리사는 유키나의 시선을 잠시 회피하다 이내 눈치를 보며 말을 꺼냈다.

 

“걱정 끼친 것에 대해 미안하다고 하는 건 괜찮아?”

“그건 괜찮아.”

“다신 이런 일 없게 할게.”

“그 말도 무리하는 걸로 들리는데.”

“아니야, 그런 거 아니니까.”

 

침대에서 급하게 일어나려는 리사를 눕힌 뒤, 유키나는 가방에서 이온 음료가 든 페트병을 꺼냈다. 리사의 이마에서 떨어진 수건을 다시 올려놓은 뒤, 페트병의 뚜껑을 손으로 힘줘 돌렸다.

 

“리사, 로젤리아에서든 다른 곳에서든 뒤쳐진다는 생각 하지 않았으면 해.”

“그러도록 할게. 그렇지만 유키나도 그렇고 누구나 그렇잖아? 그런 생각 아주 쉽게 들잖아. 노력은 하겠지만 잘 될지 모르겠네.”

 

유키나가 페트병을 내밀자, 리사가 누운 채로 천천히 이온 음료를 마신다.

 

“리사는 나한테만큼은 일류야. 내가 늘 기억하는 리사의 모습이 등이라고 하면, 내가 뒤에서 쫓아가는 중이라고 하면, 그러면 이렇게 쓰러지는 일 없게 할 수 있겠어?”

 

그 말을 들은 리사가 사래 들린 사람처럼 연거푸 기침을 한다. 이온 음료가 침대에 흐르자, 유키나는 당황하며 가방 안에 들어 있던 타월을 꺼냈다.

 

“아니, 괜찮아. 이 수건으로 일단 닦고 새 수건 이따 가져오면 되니까.”

 

리사가 자신의 이마 위에 있던 젖은 수건으로 침대에 흐른 음료를 닦는다. 음료를 닦던 리사가 갑자기 가방에 타월을 집어넣고 있던 유키나의 손을 잡았다. 뜨거워, 라고 말하려던 유키나는 리사와 눈이 마주쳤다. 리사가 자신을 이렇게 똑바로 쳐다본 게 너무 오랜만이어서 그대로 멈춰버린다. 리사는 지금 얼굴도 손도 빨갛다.

 

“유, 유키나.”

“무슨 일이야.”

“쿠키는 계속 만들면 안 될까.”

“모두에게 한 종류.”

“유키나에게만 고양이로 하고, 나머지는 같은 종류로…”

“안 돼.”

“그렇지만 나… 나한테도 유키나는 일류인걸. 쿠키, 무리하려는 게 아니라, 정말로 만들어주고 싶어서 그래.”

 

유키나가 리사의 손을 잡아 침대 위에 다시 내려놓았다. 그걸 안 된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는지 리사의 손이 이번에는 유키나의 양 어깨를 잡는다.

 

“나 정말로 좋아해. 유키나. 아니, 유키나한테 쿠키 만들어주는 거. 아니, 유키나도 좋아. 그리고 쿠키도…”

 

유키나가 리사의 손을 떼어내며 웃었다.

 

“리사, 지금 열이 너무 오른 것 같아. 나 이제 가볼 테니까, 잠을 좀 자는 게 좋겠는데.”

 

리사는 잠시 당황했지만, 일단 유키나가 웃고 있다는 사실에 안심하며 침대에 천천히 몸을 눕혔다. 유키나는 방에서 나갈 준비를 하며 리사를 가만히 내려다본다. 리사가 잘 가, 라고 하자 유키나가 다시 웃는다. 리사는 잠들기 위해 눈을 감는다. 열 때문에 어둠 속에서 머리만 울리는 느낌을 받으며 리사는 소리에 집중한다. 자리에서 일어나던 유키나가 리사에게 속삭인다.

 

“나도 정말로 좋아해. 리사가 쿠키 만들어주는 거.”

 

정말이냐고 대답하려는데, 대답이 나오지 않아 리사는 입만 살짝 연다. 잠이 들려는 리사의 귀에 대고 유키나가 뭔가 말한다. 꿈이 아니고 환청이 아니기를, 리사는 확실히 들었다고 믿으며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아니, 생각해보니 리사가 좋아. 그리고 쿠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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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9. 24. 03:34 2차창작[팬픽션]/뱅드림

그녀가 냉동실에서 투명한 봉지를 꺼냈다. 봉지 안에는 치아바타가 들어 있다. 올리브가 군데군데 박혀 있어 검은 색이 드문드문 보였다. 봉지의 매듭 사이로 손톱을 집어넣었다. 탁탁, 하고 비닐을 몇 번 건드리는 소리가 난 뒤 매듭이 풀렸다. 그녀는 치아바타 세 조각을 미리 가져온 접시에 올려 놓았다. 봉지를 다시 묶고 냉동실에 집어넣었다. 접시 위에는 치아바타 말고도 접시 반 정도 크기의 거대한 크로와상이 있었다. 야마부키 특제 거대 크로와상. 그런 이름이었던 것 같다. 주방으로 접시를 가져가며 그녀는 치아바타의 이름이 뭐였는지 떠올리려 애썼다. 야마부키 스페셜 올리브 치아바타? 그녀는 실소를 터트렸다. 평범한 빵에 스페셜이나 특제, 슈퍼를 붙이는 게 그 집의 방식이다. 굉장히 신경 쓰이지만 생각보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그녀는 도마 위에 크로와상을 올리고 식칼을 꺼내 들었다. 식칼로 크로와상을 6등분 했다. 보통의 크로와상이라면 3등분에서 4등분 정도면 알맞은데, 이 크로와상은 그렇지 않았다. 그녀는 프라이팬을 꺼내 가스레인지 위에 올렸다. 가스 밸브를 돌린 뒤, 스위치를 꾹 누르고 돌려 불을 켰다. 불이 화르륵 올라오는 걸 확인한 뒤, 중불로 줄였다.

 

그 다음부터는 코로부터 밀려오는 행복을 느끼면 된다.

그녀는 살짝 달궈진 프라이팬 위에 치아바타와 크로와상을 얹었다. 빵의 잘린 단면이 구워지도록 놓았다. 크로와상은 버터가 많이 들어서 그런지 기름을 바르지 않고 구워도 겉면이 매끈하고 향기로웠다. 그리고 그 팬 위에 같이 치아바타를 굽는 게 좋았다. 버터 향이 살짝 묻은 고소한 치아바타. 두 빵의 향기를 맡고 있으면 이후의 시간이 기대되는 법이다.

 

그녀는 따뜻하고 진하게 끓인 커피에 각설탕 한 개를 넣고 저은 뒤, 식탁 위에 올렸다. 커피가 든 머그잔 옆에는 갓 구운 빵들이 올라간 접시를 두었다. 오른손으로는 따뜻한 빵을 들고, 왼손으로는 머그잔을 들었다. 오른손 한 번에 왼손 한 번이면 되었다. 모든 게 완벽하게 되었다.

 

빵을 먹던 그녀는 문득 생각난 게 있는지 휴대폰을 열고 문자 메시지를 전송했다.

 

-모카, 올 때 빵 많이 사와.

 

메시지를 보내고 잠시 뒤, 그녀는 아 소리를 냈다. 잠시 뒤 귀까지 빨개져 고개를 가슴께까지 수그리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큰일이네, 식습관까지 변해가잖아.”

 

그래도 그녀는 빵을 먹는 일을 멈추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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