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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아야.”

 

오타에는 자주 내 이름을 부른다. 용건이 있거나 필요한 게 있을 때, 자세하게 말하는 대신 그저 이름을 부른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오타에가 뭔가를 요구할 때면 나는 그것을 맞출 수 있다. 그저 이름을 부를 뿐인데도 그렇다.

 

“물 마시려고?”

 

그런데 요즘은 그게 잘 안 된다.

 

“사아야.”

“아니야? 그럼 악보?”

“사아야?”

“피크 잃어버렸다고?”

 

옆에서 우리의 대화를 지켜보던 아리사가 미간을 찌푸린다.

 

“너희 대체 뭐 하냐. 만담이라도 하는 거면 이해해 주겠는데.”

“만담은 아리사가 더 잘할 것 같은데. 그렇지 않아, 사아야?”

“그거 무슨 소리야. 혹시 비꼰거냐.”

“어쩌면 아리사보다 토끼들이 더 잘할지도.”

“얌마, 오타에! 너 이리와!”

 

아리사가 소리를 지르며 오타에를 쫓아간다. 오타에는 텅 빈 교실 이곳저곳을 잽싸게 뛰어다니며 아리사를 피한다. 토끼 같다. 평소에는 오타에가 이름을 부르고, 내가 어림짐작으로 물건을 건네주면 오타에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했다. 물론 내가 예지능력이 있거나 오타에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연습을 한 뒤에는 보통 물을 찾으니 물을 건네주는 것이고, 연습 시작할 때나 집에 갈 때는 악기와 관련된 것을 챙기기 마련이니 악보다 피크 등을 건네주는 것이다. 약간의 눈치와 집중력만 있으면 누구나 맞출 수 있는 일이다. 오타에는 파악하기 힘들어 보이지만 조금만 집중해서 보면 어떤 점에서는 아주 알기 쉬운 사람이다. 나는 그걸 맞추는 게 좋았다. 오타에의 엉뚱한 성격 탓도 있겠지만 결과적으로는 의사소통이 매우 잘되니까, 오타에 또한 디테일하게 부탁 하지는 않았다. 사아야, 이 단어만 말하면 대부분 해결되었다.

 

“사아야.”

“응?”

“사아야.”

“하하, 이번에는 정말 모르겠네. 오타에, 미안한데 필요한 게 뭐야? 아니면 할 말 있어?”

 

그런데 요즘에는 도저히 맞출 수가 없다. 십 중의 이는 맞췄지만 그 외에는 오타에가 뭘 원하는지 알 수 없었다. 할 수 있는 모든 경우를 물어봤지만 오타에는 고개를 젓거나 다시 내 이름을 부를 뿐이었다. 이번에도 오타에는 잠시 생각하다 고개를 저었고, 아리사는 질렸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나 먼저 일 있어서 스튜디오 갈 테니까, 짐 챙겨서 와라. 그 바보 같은 대화도 좀 끝내고.”

 

아리사가 교실을 벗어난다. 텅 빈 교실에 앉아 오타에를 올려다본다. 오타에는 책상 앞에 서서 나를 가만히 내려다본다. 책상 위에 가방을 올려놓은 채, 짐을 정리한다. 교과서 넣었고, 숙제를 위한 노트도 챙겼고, 조그만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동안에도 오타에는 여전히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오타에, 혹시 숙제 노트 필요해?”

“아니.”

“있잖아, 오타에. 필요한 게 있다면 혹시 이번만큼은 그냥 말로 해주라. 나 도저히 모르겠는데.”

“사아야.”

“음, 정말 모르겠는걸.”

“사아야.”

“이거 혹시 무슨 놀이 같은 거 아니지? 카스미랑 내기라도 했다거나.”

 

오타에가 고개를 젓는다.

 

“그럼 왜 말 해주지 않는 거야. 혹시 말하기 곤란하다거나…”

 

오타에가 한 번 더 고개를 젓는다. 장난을 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올려다본 표정은 정말로 진지해 보여서 무슨 말을 덧붙일 수가 없다.

 

“사아야.”

“응, 왜.”

“사아야… 아, 음, 그러니까 원하는 게 뭔지 잘 모르겠어.”

“정확히 모르겠어서 계속 불렀다는 거야?”

“그런 것 같은데.”

“그런데 왜 내 이름을 불렀어? 오타에, 혹시 나한테 원하는 거나 부탁할 거 있어?”

“음.”

 

오타에가 평소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턱에 손가락을 가져다댄다. 턱을 몇 번 두드리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 것 같네.”

“그럼 대체 뭘까. 나한테 부탁할 게 있는데, 정확히 모른다니. 기억이 안 나는 게 아니라?”

 

언제부턴가 자연스레 추리를 하게 되었다. 탐정이 된 기분으로 오타에를 가만히 쳐다본다. 평소처럼 집중해서 쳐다보면 알 수 있지 않을까 했는데, 알 수는 없었고 오히려 오타에가 나를 집중해서 쳐다보기 시작한다. 어쩐지 서로 쳐다봤던 적은 없어서 부끄러워진 나는 고개를 숙이고 가방을 서둘러 닫는다.

 

“이러다 늦어서 아리사한테 혼나겠다. 일단은 스튜디오로 가자.”

 

가방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서다 고개를 든다. 오타에가 여전히 나를 쳐다보고 있다. 반쯤 몸을 앞으로 일으킨 탓에 오타에와 얼굴이 가까워진다. 이렇게 가까운데도 정작 오타에는 눈을 단 한 번도 깜박이지 않는다.

 

“저기, 오타…”

“사아야.”

“응?”

“사아야.”

“다시 시작된 거야?”

 

내가 한숨을 쉬는데, 오타에가 내 바로 앞에서 미소 지으며 고개를 젓는다.

 

“나 원하는 거 뭔지 찾았어.”

“정말? 뭔데?”

“사아야.”

“찾았다면서 내 이름은 왜 또 불러.”

“사아야.”

 

오타에의 얼굴이 코앞까지 다가온다. 놀라서 뒷걸음질 치다 의자에 그대로 주저앉아버린다. 의자와 책상이 덜컹 소리를 내며 움직인다.

 

“사아야.”

“그러니까, 오타에. 내 이름 왜 자꾸…….”

 

얼굴이 확 달아오른다.

 

“오타에, 아니라고 해주라.”

“사아야?”

 

자세히 보니, 오타에의 얼굴도 약간 빨갛다. 사실은 처음부터 원하는 걸 제대로 말하고 있었던 거라고 생각하니, 얼굴이 더욱 새빨개진다. 오타에의 눈을 쳐다보는 게 힘들지만 갑자기 시선을 피하기도 힘들다. 아리사의 진짜냐, 라고 하는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울린다. 오타에가 내 손을 잡는다. 몸이 의자에서 일으켜진다. 오타에가 한 번 더 내 이름을 부른다. 내 이름인데도 듣기가 너무 힘들다.

 

“오타에, 이러다 스튜디오에 지각하면 다 네 탓으로 돌릴 거니까.”

“응, 마음대로 해. 그럼 나도 마음대로 할 테니까, 이름 계속 불러도 될까?”

“으음, 그건…….”

 

 

 

 

 

 

“오타에가 늘 하던 대로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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